본문 바로가기
영화

[레바논] 가버나움 (Capernaum)

by viv! 2023. 9. 26.

도시 빈민, 난민 문제, 인신매매, 아동방임, 아동학대 및 이슬람 조혼 문제 등을 고발한 영화

줄거리; 스포 있음.

주인공 자인은 책임감은 없고 애만 줄줄이 낳는 레바논 도시빈민 가정의 장남이다.

자인은 학교에 가고싶지만 부모는 애들 교육 같은 건 관심이 없고 먹고살기도 빠듯해서 애들을 앵벌이로 내모는 주제에 계속 애만 싸지르는 막장 현실을 보여준다.

자인은 주스 판매, 약물 판매, 소매치기 등으로 무능력한 부모 대신 사실상 소년가장 노릇을 하면서 노답 집구석을 건사하고 있다.

특히 동생 사하르를 끔찍이도 아끼는데 페도필 집주인 아들새끼가 사하르에 눈독을 들이고 노답 부모란 작자들은 그걸 알아차리고는 집주인네에 잘 보이려고 사하르를 팔아 치울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사하르가 초경을 시작하고, 초경을 했다는 건 곧 결혼할 수 있는 성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사하르는 초경 사실을 들키면 꼼짝없이 팔려나갈 위기에 처한다.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인권, 강제조혼 현실

여성인권 중에서도 이슬람세계의 고질병인 강제조혼 문제를 좀 뜯어보고 싶어서 포스팅을 따로 팠다. 가장 악질적인 범죄가 소아성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인권 후진국들이 번번이

vivalavidadevivi.tistory.com


이를 아는 자인은 초경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하는데, 어린 아이 둘이 어른 눈을 속일 수 있을리가 없고 사하르는 11살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부모 손에 강제로 집주인 아들 집에 팔려나간다. 자인은 이 일로 큰 충격을 받고 그 길로 가출해버린다.

이후 자인은 놀이공원에서 일 하려고 배회하다가 청소부로 일하는 불법체류자 라힐을 만난다. 라힐은 미혼모로 요나스라는 아기가 있었는데 오갈데 없는 자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라힐과 자인은 친해지고 라힐은 요나스를 자인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가는 등 서로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자인은 어린 동생들이 많았던터라 능숙하고 정성스럽게 아기를 잘 돌본다. 그렇게 새로운 식구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던 어느날, 갑자기 라힐이 사라져버리고 자인과 요나스는 라힐을 찾아 헤매지만 라힐은 온데간데 없다.

알고보니 라힐은 위조한 임시 체류증이 만료되어 불법체류자를 단속하러 나온 경찰에 잡혀간 것이었다. 시장에서 불체자들을 대상으로 임시 체류증 위조를 해주는 상인은 라힐에게 1500 달러를 요구했지만 라힐이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을리 만무하고, 상인은 그럼 대신 네 아기(요나스)를 달라고 하지만 라힐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이후 경찰에 잡혀간 것이다.

홀로 남겨진 자인은 요나스를 돌보며 버티지만 돈이 없어 쉽지가 않다. 젖이 없어 우는 아기에게 물에 설탕을 타 먹이고 우는 아기를 달래지만 12살 짜리가 감내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러던 차에 자인은 시장 사람들로부터 상인에게 300달러만 주면 스웨덴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고 스웨덴 행을 결심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라힐과 자신의 짐이 내던져져 있고 문에는 집주인이 자물쇠를 걸어두었다. 요나스를 돌볼 공간마저 사라져버리고 자포자기한 자인이 시장으로 가자 상인은 자인을 발견하고 요나스를 좋은 집에 보내주고 너도 500불이나 주겠다며 아기를 자신에게 넘기라고 꼬드긴다. 자인은 좋은 집에 요나스를 보내준다는 말에 아기를 덜컥 넘기게 되고, 자신은 스웨덴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상인은 신분을 증명할만한 서류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출생신고서라든지, 신분증이라든지, 본인 사진이 실려있는 신문이라든지. 자인은 부모에게 출생신고서에 대해 물어볼 요량으로 다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돌아온 자인의 눈 앞에 펼쳐진건 여전히 무능한 부모와 그들이 저질러놓은 어린 동생들의 비참한 삶이다. 자인이 출생신고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부모는 ?그게 뭔데?의 반응을 보이고, 이상한 서류만 줄줄이 내놓는다. 법원 퇴거 명령서 그리고, 병원 서류.

병원 서류를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든 자인이 누가 병원에 갔냐고 다그치자 가족들은 대답을 회피하고 자인은 사하르를 떠올린다. 알고보니 사하르는 강제결혼한지 불과 몇달만에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신체가 미성숙한 상태로 성관계와 임신을 하니 임신이 정상적일리 만무하고, 하혈이 시작되었다. 하혈이 너무 심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병원에서는 사하르의 출생증명서가 없어서 신분 확인이 안된다며 진료를 거부하여서 병원 앞에서 사망한 것이다.

즉 사하르도 자인도 그 누구도 출생증명서가 없었다. 레바논 정부에게는 출생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자인은 사하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분노에 가득차서 그 길로 아사드를 찾아가서 칼로 찌른다.
그리고 살인미수죄로 감옥에 간다.

감옥에서 라힐과 다시 만난 자인은 요나스를 상인에게 주었다고 말하고 라힐은 절망한다. 자인은 불법브로커이자 인신매매범인 상인에 대해서도 진술한다.

와중에 부모라는 인간들은 자인에게 “신은 하나를 뺏으면 하나를 준다” 면서 “동생을 임신했다” 고 말한다.반응이 없는 자인에게 “딸이면 좋겠다” “딸이라면 사하르로 이름을 짓겠다”는 개소리를 늘어놓으며 사하르의 죽음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한다. 자인은 엄마의 말이 내 마음을 칼로 찌르는 것 같다면서 동생들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막스…
감옥에 갇힌 자인은 아동학대를 다룬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해서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하며 사는게 개똥같다” 면서 “부모를 고소하고 싶다” 라고 말한다.

자인의 사연이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국내적으로 큰 이슈가 되자, 법원 앞은 기자들과 사람들로 가득차고 자인은 마침내 부모를 고발한 소년으로 법정에 선다.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인권, 강제조혼 현실

여성인권 중에서도 이슬람세계의 고질병인 강제조혼 문제를 좀 뜯어보고 싶어서 포스팅을 따로 팠다. 가장 악질적인 범죄가 소아성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인권 후진국들이 번번이

vivalavidadevivi.tistory.com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인권, 강제조혼 현실

여성인권 중에서도 이슬람세계의 고질병인 강제조혼 문제를 좀 뜯어보고 싶어서 포스팅을 따로 팠다. 가장 악질적인 범죄가 소아성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인권 후진국들이 번번이

vivalavidadevivi.tistory.com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인권, 강제조혼 현실

여성인권 중에서도 이슬람세계의 고질병인 강제조혼 문제를 좀 뜯어보고 싶어서 포스팅을 따로 팠다. 가장 악질적인 범죄가 소아성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인권 후진국들이 번번이

vivalavidadevivi.tistory.com

태어나서 고통만 준 부모. 부모 역할을 하지 않은 부모.

“부모가 애를 그만 낳게 해주세요.“
“배속의 동생도 나 처럼 될거에요.”

영화를 보는 내내 불과 열두살 정도에 불과한 자인의 얼굴이 아이답지 않게 웃음기가 메말라 있는 점이 마음이 아프다. 부모라는 작자들도 한심하고 쳐죽이고 싶으나 후에 하는 말들을 보면 저들도 별 수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인의 엄마는 진심으로 자식을 많이 낳았으나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하르는 (죽기 전) 잠시나마 침대에서 잘 수 있었으니 좋은 삶이었을 거라는 망언도 한다. 저들의 삶을 살아본적 없는 우리가 저들을 무식하고 책임감 없다고 비난한들, 자인 엄마의 울부짖는 목소리나 자신에게는 자식밖에 없다는 말을 들으면 진실로 저 사람은 저렇게 믿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자인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으나 자인의 부모 또한 아동학대 아동방임 조혼 등의 피해자일 것이다. 자인처럼 학교를 가지 못했을 것이며, 배운 것이 없어 할 줄 아는 거라곤 범죄나 소일거리 그리고 번식(…)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비참한 삶을 자인에게도 대물림 했다. 그러니 온 국가가, 온 사회가 방관자이자 가해자일뿐이며 저들은 구조적인 희생양일 뿐인 것이다.

재판이 끝난 뒤 언론을 탄 만큼 자인의 진술에 따라 불법 브로커는 구속이 되고 아기 요나스는 좋은 집은 커녕 팔려나가기 위해 창고에 15명의 다른 팔려온 인간들과 갇혀있다가 구조된다. 자인은 출생신고를 12세의 나이에 처음 하게 된다. 그리고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영화속 자인이 미소짓는 유일한 장면

자인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똑똑한 아이로 태어났다. 학교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공부를 해서 좋은 사람이 되고싶으나 그럴 수 없었다고 진술한다. 불행히도 자인은 똑똑했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직시할 수가 있었고 그 비참함을 배로 느낀 것이었다. 그러나 희망적인 점은 자인이 어쩌면 조부모 또는 그 위에서부터 내려왔을 비참한 대물림을 제 손으로 끊은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부모를 고소한 일은 자인은 부모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부모의 역할, 사회의 역할, 빈곤 문제와 난민 문제 등을 다루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여운이 깊다.

사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나를 돌아보게 한 영화였다. 이런 거대한 구조적 문제 앞에서 나같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나는 어쩌면 내가 줄 수 있었을 법한 하루 끼니라도 해결할 수 있을 그런 정도의 도움 조차 인색했던 게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된다.

언젠가 “구걸하는 이에게 돈을 주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다시 내일 나와서 구걸을 할 뿐이다.” 이런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물고기를 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라는 종류의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또 내가 살던 곳은 아이들이 매일같이 돌아다니며 작은 티슈를 팔거나 껌을 팔거나 하며 앵벌이를 했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에게 생계 유지를 위해 자꾸 돈을 쥐여주는건 부모가 아이들을 자꾸 거리로 내모는 걸 어쩌면 사회적으로 방임하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오만하다. 당장의 입에 풀칠이 더 급한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너무 간단하게 그건 정부나 구호단체가 해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정부를 통해 해결하는게 저들에게는 쉽지가 않다. 당장 자인처럼 출생증명서가 없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난민등록 같은 것도 스스로 해내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이니까.

난 실제로 자인 같은 시리아 난민들을 자주 봤다. 그리고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도움을 건네지 않았다. 딱 한번 너무 배가고프다는 6살쯤 되어보이는 아이에게 근처 맥도날드를 들어가서 치킨너겟과 키즈밀을 사준 것이 전부이다. 아이 손에 돈을 들려 보내는게 더 간단했을 수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는… 상기한 이유처럼 그 뒤의 어른 등이 아이를 계속 앵벌이나 구걸을 시킬까 염려되어 그랬다. 애를 구걸이나 시키는 부모란 작자들이야 안 봐도 뻔하니 애가 내가 보는 앞에서 배불리 먹는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아이가 고아인지, 자인처럼 소년가장인지, 요나스같은 아기를 스스로 돌보는지 등은 내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단순히 동정심에 그리고 또 어느 정도의 경계심이 내린 순간적이고 오만한 결정이었다.

매일 출퇴근 하던 길에 어느날 아이를 안고 아이가 배가 너무 고파 힘이 없다는 말을 하며 구걸을 하던 여자가 나타났다. 젖먹이 아이를 안고 있어서 마음이 아팠지만 출퇴근 길, 매일 오가는 길이라 한번 돈을 들려주면 그 뒤로는 피하기어려울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다가 어느 마트 앞을 지나치면서 아기가 먹을것이라도 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마음 먹고 돌아갔지만 이번엔 그 여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잠이 들기까지 계속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잠시나마 고민했던 이유가 너무나도 위선적인, 내 마음이 편해야하니 도와는 줘야겠지만 어쩔 수 없이 나도 인간이니 피차 계속 엮이기 싫고 귀찮아지기 싫은 이유였어서인걸까? 내가 괴로울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나는 괴로웠던거 같다.


자인과 요나스

자인이 요나스를 책임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할 때 자인과 요나스의 딱 봐도 사정있어보이는 조합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수많은 ‘어른들’이 보인다. 내가 길에서 자인과 요나스를 봤으면 달랐을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아니란걸 알 수 있어서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맘이 더 무거웠던 거 같다.

우리가 가진 제1세계의 시선으로 저들을 보려고 하면 당연히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다.

“애를 학교를 왜 안보내” “옷을 왜 저렇게 입혀” “먹을 게 없으면 나가서 일을 해야지” “정부가 보조금 주는데 성인들이 그것도 하나 알아보고 신청을 못하나?”  같은. 그리고 그냥 ”저들은 안 돼“ 라는 마음으로 포기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를 포기한 순간에도 수많은 자인과 사하르, 라힐, 요나스가 생겨나고 있다.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좋은 영화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