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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국]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by viv! 2019. 12. 19.

스포가 한뭉탱이 들어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감상
매년 겨울 꺼내 보는 영화.
겨울이 왔구나 싶을 때 쯤에는 항상
하얀 눈에서 뒹구는 그들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 된다.

 
가장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로맨스 영화로 내가 처음 영화를 본 16살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번을 봐 왔지만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지는 영화다.
기에 명작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꼽는다.
1회성으로 증발하는 영화가 있는 반면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해석이 풍부해질 수 있는 영화가 존재하는데 이터널 선샤인은 그런 영화다.

 
Joel 은 소심한 남자.
Clementine은 개성있는 여자.
둘은 달라서 서로에게 끌렸고 치고 .

실제 .

나는 Joel에게서도 Clementine에게서도 나의 모습을 보았다.

Clementine의 충동적이고, 무계획적인 모습.
“그냥 해버리지 뭐!”
“그냥 가지 뭐!”
“oh , we should do this, right now!” 와 같은 모습들 말이다.

또. Joel의 , 남을 자기 멋대로 평가해버리는 judgemental 한 모습을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Clementine과 Joel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또 헤어질 수밖에 없는걸까?

Clementine.
그녀는 조금이라도 흥미가 없는 일에는 견디지 못하는 듯 해 보인다.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계속해서 해야만하고, 그렇지 않은 단조로움에는 쉽게 질려버리는 스타일. 그리고, 정말, 필터링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생각나는대로 내뱉는 면모가 좀 있는 것 같다. 아주 활발하고 쾌활한 만큼이나 머리가 비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머리가 좋아보이는 캐릭터는 아니다. (Library 발음을 늘 liberry 라고 한다-고 Joel은 지적한다.)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남들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길에서 Joel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기도 하고, 평소에도 f word는 달고 산다. 한국 말투로 치면 말끝마다 존나/개를 달고 사는 것과 비슷.



 항상 인생을 100%로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Clem.

 
반면 Joel은 수동적이다. 고리타분 하기도 하고 지루하다. 충동적이거나 무계획적인 것은 이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도 반복되는 일상에 꽤나 지루함을 느끼지만 특별히 탈출구를 찾는 편은 아닌것 같다. 하지만 섬세하다.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은 찌질한 면모가 있다. 터놓고 얘기하기 보다는 상대를 속으로 평하려고 한다. 그래서 답답하다.
그리고, 애인인 Clementine에게 100% 마음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약간의 방어기제인지는 모르겠는데, Clem이 Joel에게 “I’m an open book...” 이라고 하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Joel은 “Constantly talking isn’t necessarily communicating...” 이라고 응수했기 때문이다.

 
 
 
소심하고 수동적인 Joel이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인 Clementine에게 순순히 이끌려 들어오면서 그들의 연애는 시작된다.

그들이 사랑한 내용은 주로 Joel 이 지우려고 하는 기억들로부터 유추해 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자꾸 변하기 때문에 처음 볼 때는 약간 어지러울 수 있다.
(평범한 IQ를 가졌다면 두번 이상 보고 이해하는 것이 정석)
 
 

클레멘타인의 머리색 = 연애의 단계

이때 Clem의 머리 색은 시시각각 변한다. 머리 색에 대한 재밌는 해석이 있는데, 이것이 Clem의 상태를 대변한다는 해석이다.
우리는 영화 내내 Joel의 시야에 머무르기 때문에 Clem의 마음속에서는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단서가 그녀의 머리색 이라는 것이다.

또한 과거가 뒤죽박죽으로 전개되는 어지러운 서사에서 Clem의 머리색이 어느 시기의 연애 단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1. Green Revolution 초록 혁명 , 만남 

처음 만날 때의 Clem 머리는 초록색이다.
연한 초록색은 마치 봄을 연상시킨다. 머리 색의 이름은 Green Revolution. 초록색의 혁명이다. 아주 큰 변화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연애 관계에 들어서는 시작을 의미한다. (또한, 마지막에 다시 초록색의 회상 장면이 나오는 것을 두고 혁명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일어나는 것처럼 이들이 반복되는 연애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하기는 함)

Joel은 이때 Naomi와 끝나가는 관계중에 있었는데 이때 Joel의 인생에 나타난 Clem의 머리색은 뭔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Clem과의 만남은 아주 강력하게 그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리셋버튼 같은 것이다.

2. Red Menace 붉은 위협 , 사랑 

그리고 그들의 연애가 진행되며 그녀의 머리는 새빨간 색이 된다.

이때에는 Joel과 Clem의 사랑이 절정을 이루어 가장 행복할 때이다. 그들은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서로를 원한다. 이들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랑에 빠진다. 머리색의 이름은 Red Menace. 붉은 위협.

이때의 사랑은 가장 강력하고 화려하다. 

3. Agent Orange 에이전트 오렌지 , 권태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은 점차 오래된 연인이 되어간다
Agent Orange, 베트남 전에 쓰였던 고엽제의 일종이다. 
오렌지색은 빛바랜 빨간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름처럼 둘의 관계는 서서히 메말라간다.
둘은 편안하기는하지만 더이상 서로에 대해서 열렬히 알아가지 않아도 되며 그럴 필요도 없다.
때문에 그들의 대화 역시, 권태기에 빠져버린 연인들처럼 변한다. 
여기서 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며 지독히 공감했던 장면이 나온다.
 
데이트를 하러 나온 언제나 가는 또 그 중식당.
마주 앉은 두 사람, 대화 주제는 없다.
 
"샤워하고 나오면 좀 머리카락 좀 치워, 역겨워(repulsive)"
"어, 그래- 미안. 깜빡했네..."
Joel은 이때 Clem이 Repulsive...이라고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맞힌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 Clem은 술병을 들고 좀 줄까? 묻는다.
Joel은 사양하고,
둘은 곧 말이 없어진다.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Clem을 보며 Joel은 생각한다.
 

'또 취해서 바보같이 굴겠군...'

 
연애를 하다가 Agent Orange의 시기가 오면,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상대를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 부분 알고 있기도 하기에 ,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상대의 단점이 두드러지고
그중 반복되는 단점은 극대화 되어 보인다.
이때의 상대는 repulsive하기도, stupid하기도 하다.
 
그리고 Joel은 그들의 상태를  The dining dead 라고 칭한다.

Are we like those bored couples , you feel sorry for in a restaurant? Are we the dining dead?

의무감에 마주앉은 채, 식사를 할 뿐인 영혼 없는 두 사람을 죽은 사람들에 비유한 것이다.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숨막히는 시간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건 아닌데 말이다. (Joel이 오렌지 머리의 Clem을 Tangerine!이라는 애칭으로 부를때 나는 애정을 느꼈다. Clementine 자체가 씨 있는 Tangerine이기도 하고...?)

Tangerine!!

이 시기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이상한 증오심에 사로잡히고 서로를 생채기 내려고 하는, 과도기적 단계이다. 알랭드 보통은 Essays in Love에서 이 시기를 낭만적 테러리즘의 상태로 설명했던 것 같다. 이때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주는 모든 상처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대부분은 1년 6개월 내지 3년 안에 이 시기를 맞이하고, 관계를 접는 사람들이 많다.
Joel과 Clementine의 관계도 이 시기를 거치며 서서히 내리막을 걷는다.
늦게까지 외출 하고 잔뜩 술취한 채로 돌아온 Clementine에게 한껏 심통이 나 있는 Joel.
Clementine은 오는 길에 그의 차를 살짝 박았다고 하고, Joel은 진심으로 빡쳐보인다. 
늦게 술취해서 들어온 여자친구, 술 냄새 풍기며 헤죽거리면서 자기 차를 찌그러트렸다 하는데 좋아할 남자는 없긴 하지.
화를 내는 Joel에게 숙일 성격이 아닌 Clementine은 "니 밴댕이 같은 속은 내가 밖에서 누구랑 잤나 안잤나 생각하고 있지?" 하고 그를 자극한다.
여기서 Joel은 폭발한다. "그게 니가 사람들이 널 좋아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안그래?"
 

That's how you make people to like you

그 말을 들은 Clementine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다.
정신 차린 Joel이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만 Clementine은 화가 너무 많이 나서 잡히지 않고 그대로 집을 나가버린다. Joel은 집 나간 그녀를 더이상 쫓지 않는다.
 

4. Blue Ruin 파란 폐허 , 이별 혹은 새로운 시작

 
Blue라는 색 자체가 상징하는 것은 우울감, 상실이다.
거기다가 ruin, 폐허까지 붙었으니 연애는 종지부를 찍음에서 끝나지 않고 완전히 끝장이 나버린 상태인 것이다.
관계가 끝난 Clementine은 파란색으로 염색을 해버린것 같다.
 

"excuse me, sir? Paaaaaatrick Baaaaaaaby boyyyy"

Move on을 위해서 염색을 하고 기억도 지워버렸다.
그래서 발렌타인 선물을 주고, 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러 온 Joel을 알아보지조차 못한다.
게다가 그녀의 옆에는 PAAAAAAAAAAAATRICK BAAAAAAAAAAAABY BOY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에서 제일 Creepy한 인물...거의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Joel보다 더 찌질함) 
이때 충격을 받은 Joel은 빡친채로 기억을 지우게 되고... 
 
 
영화는 초반으로 돌아간다.
기억이 몽땅 지워진 두 사람은, 어느 기차 플랫폼에서 마주치게 된다.
기억속 Clementine이 지워지기 직전, Joel의 귓가에 "Meet me in Montauk..."라고 속삭이는데, 그 기억만 가지고 이상한 끌림 속에 Montauk행 기차를 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Clementine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갔을 때,
Clementine은, Joel을 보며 너무 착하다고, 어떻게 이렇게 착할 수 있냐고, 감탄하며 그를 끌고 자신의 플랫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고 "우리는 결혼할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이제 늦었다며 가보겠다는 Joel에게 "Noooooooo You should stay!"라고 하는 것 보면 정말 겁도 없고 용감한데다가 순간순간의 끌림에 충실하는 성격인게 확실하다. Joel이 헤어지기 직전에 비꼬면서 한 말이 어느정도 이해가 될 정도.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집을 나서는 Joel에게 "Call me!! and Wish me happy Valentines day!!!!that would be nice"라고 발랄하게 외친다.
 
 이후 다시 만난 Joel과 Clementine은 함께 Joel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Clementine 앞으로 발송된 라쿠나 사의 테이프에는 그들의 헤어진 이유, 상대를 지우려는 이유가 흘러나온다. 
Joel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찌질하고 한심하고....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Clementine의 말을 듣고 Joel은 심한 모욕감과 함께 이 낯선 여자가 자신을 놀리는 것인가 싶어서 차를 세우고 Clem은 영문도 모른채 혼란스러운채로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Joel역시 라쿠나 사에서 발송된본인의 테이프를 듣게 된다.
library를 liberry 라고 발음할 정도로 무식하고, 한심한 머리 색깔 바꾸기에...
방금 전 설렘이 가득했던 만남의 상대를 하나하나 씹고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멍하니 듣는 와중에 Clem 이 Joel의 아파트로 도착하게 되고, Joel의 이웃 주민이 Clem을 알아보고 "good to see you clem" 하는 것을 보고 얼떨떨해 한다.
그리고 Clementine도 Joel의 목소리가 자신을 헐뜯는 것을 같이 듣게 된다.
이제 원래 사랑했던 사이이며 서로가 싫어져서 헤어졌고 둘다 기억을 지웠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둘은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만, 뒤에 흘러나오는 험담 속에 담담한 대화는 어렵고 혼란스러운 Clem은 그냥 자리를 벗어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이번에 Joel은 그녀를 뒤따라 복도로 나온다. Wait!하며.
 
다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Joel은 Clem 을 일단 잡고 본다.
 

Clementine은 이미 한번 실패한 연애에 대하여, 이렇게 얘기한다.
생각이 너무 많은 Joel은 또 Clementine을 이리저리 평가하고 머리를 굴릴 것이며, 그리고 Clem은 Joel을 답답히 여기고 지겨워할 것이고, 둘은 결국 다시 헤어질 것이라는 것.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헤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Joel의 대답이 이 영화의 명장면을 장식한다.

아무렴 상관없다는 그의 태도.
여기서 이미 알고 있는 Clementine의 단점까지 다 안고 가겠다는 사랑이 보인다.
 
사랑은 아마 이런게 아닐까? 다 알아도 다시 해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는 일들은 그냥 한번 해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니까 말이다.
재회를 지지하거나 성공하는 케이스를 본적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인연이라면 헤어지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1인이지만,
Clem과 Joel의 재회는 응원해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것은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판단 오류임과 동시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갈 수록 느끼기 때문에.

이때 Okay라고 대답하며 웃는? 우는? Clem의 머리 위가 어렴풋이 푸르다.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나오듯 다시 시작하는 사랑을 뜻한다.
 
 
추가적으로 궁금한 사항 ;
Joel 이 Clementine을 만나기 전에 만나던 Naomi...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고 Joel과는 왜 끝나가고 있었던 걸까?

한가지 더,

Clementine 시각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 Joel의 어떤 부분에서 그에게 충동적으로 빠져들었고 또 완전히 그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으며 어떻게 기억을 지울 생각을 했는지. 그날 그의 아파트를 박차고 떠난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또 Paaaaatrick Baby boy의 접근은 어땠는지. 그리고 기억을 지울 때 Clementine 도 Joel처럼 간절히 기억이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는지. Clementine도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면서 Joel과의 기억 속에 숨었을지.
감독님들 배우님들 생각 없으시겠지... ㅠㅠ 15년도 더 지난 영화라 이제 너무 늦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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