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발생 16일이 지난 지금 생존자는 없다고 봐야하고, 생존자 구출이 아닌 잔해 제거 및 도시 재건이 주 프로젝트가 되어가고 있다.
튀르키예에서 구조대가 생존자를 꺼낼때마다 외치는 말이 있다.
알라후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
IS 때문에 많이 왜곡되었지만 사실은 그냥 말 그대로 신을 찬양할 때 하는 말이다. 위대하고 전지전능한 신에게 감사할 때 혹은 그런 신 앞에서 충성을 맹세할 때 외치는 말 God is Great 이라는 말. 사실 이런걸 보면 종교를 믿지 않는 나같은 사람은 좀 어처구니가 없다. 알라를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인 동남부, 가장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이, 지진에 대한 대비책 없이 지진대에 살다가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덕에 최악의 참사를 당해놓고는 알라가 위대하다니… 이 모든게 알라의 뜻이라면 너무 열받는 일 아닌가? 평생을 비교적 가난하고 힘들게 살다가, 하필이면 지진대 위에 자리를 잡은 허술한 집에서 새벽 4시에 발생해서 뭐 잠에서 깨어 도망칠 틈도 없이 사망하는게 알라의 플랜이라면,만일 내가 알라를 굉장히 믿어서 매일매일 5번씩 무슬림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이면 정말 굉장히 화가 날 것 같은데. 가난한 동남부가 서부보다 신도의 비율이 높을텐데, 신이 있다면 이들을 뭐하러 벌하는 것인가? 참사 첫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골든 타임이라는 72시간 동안 날이 따뜻했더라면 생존자로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수많은 이들은 사실 잔해 속에서 얼어죽었다.
이게 알라의 뜻이라면 대체 그 알라는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한다는 말인지. 무신론자인 나는 알라 찾을 시간에 과학을 연구했으면 그리고 엔지니어들을 잘 대접했으면 이맘(이슬람 종교인)보다 더 많은 생명을 살렸을텐데 싶다.
최악의 피해를 입은 하타이는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추웠다.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가 고통스러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추위였다. 뻥 뚫린 삭막한 도시를 휘감은 겨울공기가 너무 무겁고 차가웠다. 기억나는 것은 기가 막힌 추위와 허망함. 그동안 더운 것과 추운 것을 용캐도 잘 피하며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first world problem 속에서 살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스타벅스가 멋대로 주문을 취소해서 화내던 순간들 같은. 문명이란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가를 생각하면서 나는 또 금방 이 순간을 잊어버리고 잘 살아가려나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때가 지나면, 정해진 순번만 돌아오면 나는 돌아가지만. 여기 남은 이들 중 이곳이 삶인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일까.
시체를 몇 구나 보게되려나, 시체 썩는 냄새라는걸 정말로 내가 맡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현장 내려가는 내내 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너무 무서웠다.
볼 수가 없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런 경험으로 ptsd를 얻고 싶진 않은데 나는 그런 그릇은 없는데.
이거 산재 아닌가.
난 강심장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내 직업을 사랑하지도, 대단한 사명감이나 인류애가 있는 것도 아닌 그냥 나약하고 비겁한 간장종지인데…!
눈앞에 보인 붕괴된 건물 잔해는 비현실적이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인터뷰 속 사람들처럼 눈물이 흐를 정도로 슬프거나 내가 걱정했던만큼 멘붕하지 않았다. 그냥 도시 자체가 삭제된 것을 바라보던 순간과 칠흙같던 어둠이 생각난다. 생존신호를 듣기 위해 작은 소리도 내지않고 모두가 침묵하며 구조대의 수신호만 바라보던 순간, 누군가의 일상이 묻어있을 삶의 흔적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비현실적 순간이 너무 이상했다. 널부러진 장난감, 쏟아져나온 세탁물들, 침대 위에 깔려있었을 이불들, 열린 옷장 사이로 보이는 잘 정돈되어있었을 분진가루 묻은 옷가지들, 반쯤 파쇄된 냉장고나 세탁기. 찌그러진 쇼파나 뜯겨져나간 커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의 규모를 보며 이 난잡한 짓거리가 신의 뜻이라면 신이란 작자는 매우 고약한 노친네일 거란 생각과 함께 이 와중에도 신을 찾는 사람들을 가소로워하면서도, 잔해 속에 몸을 던지는 구조대를 보고서는 금세 나약해져서 무언가에게 나의 마음을 계속 말하고 있었다. 제발 구조작업으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퀘퀘한 분진가루 속에서 눈조차 뜨기가 힘들고 꽉 조이는 분진 마스크 속을 뚫고 들어오는 매케한 공기 때문에 숨 쉬기가 힘든 기억이 난다.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지진을 방지하겠다며 지진세를 걷어놓고서는 사용처를 밝히지 못하는 이 정부는 너무 부패했다. 집권 전 지어진 건물들이라고 거짓말을 하더니 위성사진이 공개되아 새건물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이 모든 부패를 돈 받고 용인한 이 정부. 하지만 거짓말만 늘어놓는 정부만의 잘못일까. 가난은 죄일까. 무지도 죄일까. 이 모든 것을 알라의 뜻으로 견디게 하는 신앙은 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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