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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

잘 늙는 일, 건강한 인간관계 유지법

by viv! 2023. 11. 5.

인간은 늙는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존재들이다. 늙기 싫다고 안티에이징을 쳐바르고 젊게 살겠다고 요즘애들 말을 배워봤자, 뇌를 속이고 몸을 속이는 것으로는 몇년을 늦춰봤자, 결국 헛된 일이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은 거스르지 못하고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 할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인간의 라이프 스팬이 길어졌다. 어찌나 길어졌는지, 스스로 꽤나 머리가 굵어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드는 이십대 후반에 접어든 요즘에도 나는 사회에서 애 취급을 받는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노처녀 취급 받을 나이인데 말이다. 90년대 인터뷰 영상들을 보면 그 시절 30-40대 들은 요즘의 50-60대 같다. 그러니 평균 수명은 90세를 웃돈다.

시대가 변하기는 변했다. 늙는 단계가 오래 간다.  한번 배정받은 이 몸뚱아리로, 늙어가는채로 오래 살아야만 한다.

그러니 늙는 것을 좀 더 자연스럽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연습을 종종 하는 편이다. 모두가 종국에는 같은 속도로 늙으니 공평한 게임 같지만 그냥 늙는다는 개념 자체가 어쩐지 빛을 잃는 기분이니 생각하면 처연해지고 그런 순간이 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십대 후반에 갓 접어든 지금 벌써 그러하니, 30-40대가 되고나면 약간의 헛헛함과 씁쓸함이 더 커지려나? 하긴 어떤 이들은 절대로 죽어도 20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그건 모를 일이다.

잘 늙는게 무엇일까? 사회에서 나이를 헛쳐먹은 인간들을 종종 조우하고 나니 나이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나름의 반면교사로, 저렇게 나이만 쳐먹지 않고 제 나이와 어울리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리고 몇년간의 고민에 해답이 될 법한 분을 찾았다. 밀라논나 라고 정말 건강하고 존경할만한 가치관을 가진 어른이 계신다. 성함은 장명숙. 패션디자이너로 이태리 1세대 패션유학생이자 굵직한 이력을 가진 한국 패션계의 대모같은 분이다.

 

밀라논나 Milanonna

패션과 제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함께해요 아미치들~ Instagram @mila_no_nna

www.youtube.com


이분을 나는 처음에는 유튜브로 접했는데, 유튜브 채널마저 너무 그 분에게 어울리게 금방 접으셨다. 유튜브가 나쁜건 아니지만 결국 자본주의 플랫폼이다보니 처음에는 순수하게 내 이야기를 하는 곳으로 시작하다가도 다들 뭔가 결국에는 본연의 색깔을 잃어가는 흔하디 흔한 곳이었는데(또 그 과정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는)… 밀라논나는 그런 조악한 유튜브 생태계와는 진작 벽을 치신거 같고, 말 그대로 박수칠 때 떠나신거 같다.


그리고 스스로 할머니라고 칭하시는데, 밀라논나 자체도 밀라노의 할머니 라는 뜻이다. 저렇게 스스로를 할머니라고 칭하는 분은 참 오랜만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어감이 존경이나 사랑이 빠진지 오래인거 같다. 그래서인가 할머니 나이임에도 할머니 소리 듣기 싫다거나, 내가 ㅇㅇ(손주 등) 한정 할머니지 늬들 할머니는 아니지? 하는 세상인데, 뭔가 생판 남인 여자 어르신이 스스로 익명공간에서 조차 스스럼없이 “할머니가 오늘 무슨 무슨 얘기를 해줄께요” 하는 것은 꽤 신선하면서도 정감 갔다.

참 뭐랄까 나이를 들어갊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건 어려운 일이긴 하다. 자신의 삶이 중심이 되는 삶을 말 뿐만이 아니라 진정 실천하는 어른을 내가 살면서 몇 번이나 봤을까 싶다. 여성으로서의 롤모델을 누구로 할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데 정말 닮고싶은 어른이었다.

밀라논나는  삶의 주인이 나일수 있는 그런 삶을 꾸려나가는 방법을 주로 얘기한다. 평생을 주도적으로 당당하게 살아오셨다. 그리고 각종 어려움 속에서도 상황을 탓하거나 남을 탓하기보다는 개선하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끝끝내 이뤄낸 성취감, 자기만의 라이프 스토리가 탄탄한 분이라서 한참 차이나는 세대이지만 보고 배울게 많다.

본인의 전공인 패션팁, 각종 일상 팁, 인생 팁 모두가 사실 공짜로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한 이야기들이었다.

밀라논나가 남긴 말 중 인간관계에 대한 내가 정말 지극히 공감하는 말이 있어서 가져와보았다.


적당한 거리감과 건강한 경계선


밀라논나는 좋은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감과 건강한 경계선이 필수라고 말한다.
밀라논나에게는 아드님이 두 분 계신데, 두 분 다 미혼이셔서 손주가 없다고 한다. 그걸 알면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들 말한단다. “손주 없어 서운하시겠어요”


뭔 의미인지 모를 이런 개똥같은 말을 인사치례랍시고 건네는게 우리네 오지랖 문화다. 네? 아니오? 어느쪽으로 대답하건 대답한 쪽이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종류의 기묘한 질문들이 있다. 이런 질문이 기분이 나쁜 이유는 질문을 하는 쪽에서 기저에 못난 심보를 깔고, 이미 어떤 종류의 답을 미리 정해놓고 질문하는 답정너인 경우기 때문이다. 저 질문은 이를테면 ”손주 없어 적적하지? 손주 보고싶지? 손주 없으니 참 너도 딱하다!“ 이런 심보가 깔려 있기 때문에 사실 정말 상대의 생각이 궁금해 묻는 류의 질문이 아니다. 이건 그리고 사실 인간관계에서 선을 넘는 것이다.

밀라논나는 이런 무례한 류의 인간에게는 “네 섭섭해요” 라고 말한단다. 더이상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내 인생을)책임져주지 않을 사람” 이라고 말한다. 내가 손주가 있어 좋든, 힘들어 죽든, 손주가 없어 섭섭하든(…?누가 누구에게 섭섭해야 하는지 주체는 누구지) 이 말을 한 사람과 내 감정의 예/아니오 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게 맞다면, 답정너가 듣고 싶은 대답은 필히 “네 손주 없어 적적해요”이니 그 답정너 대답을 딱 던져주고 대화를 차단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감정이나 생각의 깊이가 그 정도인 사람들이니 말이다.


밀라논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윤리와 도덕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내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자기 주체적 삶을 살아가세요.
몫을 나누지 않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신경쓰지 마세요.
인간 관계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요. 내 몸이 거부하는 관계는 폐기해도 괜찮아요.


이 간단한 원칙만 지키면 생각보다 인간관계가 단순해진다. 내사람(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내 몫을 나눌 사람들) 내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세상을 보면 내 사람 밖의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저 창밖의 도로 소음에 불과하게 작게 들린다.

막상 친할수록 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예전부터 그런 사람들을 경계해왔던 것 같다. 세상 살다보면 무례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데 무례함을 인지하는 것도 나는 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서,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상대를 굳이 지적하고 설득하려고 한 적은 없다. 대체로 그런 상대가 내 사람은 아니라 오래보지도 않을 건데 뭐 굳이 내가 기분 나쁘게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너 무례하다”라고 직접 말해줘야 할 정도라면 어차피 말해줘도 모르는 상태일거기 때문에 말해줄 필요도 없긴 하다.


선을 지키는 것도 지능의 영역이고 그래서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랑만 지내고 싶었다. 선을 지킬 줄 알아야 괜찮은 관계도 건강하게 오래 간다…뭐 그런 정도로 생각해온거 같다. 어린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인간이 살다보면 생각이 변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로는 쭉 그렇게 지내왔다.

선을 잘 지키기 위해서인가 내 깊은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되도록 피상적인 얘기라든가 어떤 주제를 정해두고 그 바운더리 안의 이야기만 나누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들은 남의 얘기는 어디 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얘기랍시고 떠벌떠벌 떠드는 것이나 어찌저찌 알게 된 남 얘기를 주절주절 말하는 것이 모두 너무 없어보였고, 그런 사람들이랑은 결국 내 이야기의 바운더리를 매우 좁게 치게 되고 결국 나눌 이야기가 없어져 연이 끊어지게 된 거 같다.

그러다보니 너무 사람을 가려 사귄다거나 불필요하게 벽친단 소리를 듣기도 했다. 스스로 돌이켜봐도 다소 사회생활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모가지가 빳빳한 것도 같다. 그런데 결국 이게 적어도 내 정신건강에는 좀 더 부합하는 방법인걸 알게 되었다. 피곤하거나 예민하거나 또 너무 엄격한 성격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차피 나 좋다는 사람은 내가 평생 이 지랄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해줬으니까 크게 상관이 없었다.

사람을 사귀는 일 자체가 귀한 일이지만 같이 늙어갈 수 있는 부류의 좋은 사람을 사귀는 일은 해가 갈수록 더 귀하다. 그래서 잘 늙는 방법과 건강한 인간관계 유지법은 항상 고민해볼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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