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마지막 학기 때 들은 수업에서 스페인인 C교수는 최근 몇 년간 급부상한 "PC(Political Corectness) Corrección política"가 대학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매우 동감했다. 대학은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하는 공간이어야 했는데, 나의 대학시절은 새로운 검열의 시대였다. 이전의 세대가 사상을 검열하고 매도했다면, 우리 세대는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아닌지를 두고 검열하고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들은 도덕성 타락을 이유로 매장해버리는 점에서 비슷하다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지만, 스페인에서도 페미니즘이 뜨거웠다. 대학생으로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마드리드의 여성인권시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조금 유별난 여자아이였다. 비슷한 기조가 한국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는 하도 "모르면 공부해" 소리를 들어서 여성인권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관련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고자 관련 정부기관에서 인턴도 해봤다. 그러나 곧 한국과 같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정책으로 여성인권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각각의 사례는 보다 세분화된 작업이 필요하고, 어떤 문제들은 단지 성별에만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닌데, 자꾸 성별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라 하니 스스로가 편협하게 사고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란했던 기억이 있다.
비단 페미니즘만이 아니다, 각종 젠더 이슈부터 BLM 등으로 핫해졌던 인종이슈,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함께 분노해주기 쉬운 취약한 주제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검열한다. 우리는 순간순간 자극적인 사례들을 접하면서 감정에 휩싸여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고, 배려와 차별을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그 집단에 대한 말을 할 수가 없게되어버렸다. 좋다, 이제 다들 조심히 말하겠지. 그런데 그게 마냥 좋고 옳을까?
매일매일 불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불편함을 만들지 않으려고 불편할 법한 말을 하지 않는다. 아, 좋아 깨끗해졌네. 정화됐네. 진작 이랬어야지.
문제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대하는 관용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물론 여성인권을 개차반으로 생각하는 머리가 썩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분명 우리 사회에는 소수라고 본다.
문제는 "이렇게까지...?" 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조차 극단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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