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밝았고, 무의식대로 살다가 사주라는 것을 봐보기로 했다.
20살 때였나. 수능 처참하게 망하고서 우울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고등학교 친구랑 같이 사주를 보러 처음 갔었다. 지금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기억에 남는 말은 없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위치로보나, 뭐로보나 잘 보는 곳도 아니었을 것 같고 그냥 재미로 보고 돈 뜯기는 곳이었던 것 같다. 코흘리개 때 무슨 돈을 주고 사주를 봤는지도 기억 안 난다 ㅋㅋ 얼마 냈는지도 기억 안 나는데 그냥 그 돈으로 맛난거나 먹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사주를 보았느냐하면 …
하는 일이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남의 인생을 자꾸 들여다보고, 그걸로 그를 평가하고 하는 일이다보니 생각해보건대, 무언가 알 수 없는 정해진 궤도가 있는 것만 같았다. 어른들이 말하는 “제 운이다” 하는것 처럼 마치 어떤 사람은 순순히 잘 풀리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온갖 역풍을 홀로 맞아야 하고 뭐 그런게 있는 기분이다. 세상이 알수없는 존재가 짜둔 시뮬레이션 같달까.
갑자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거나 가자지구가 봉쇄되거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붕괴되거나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을 내가 미리미리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떤 정책을 콕 짚어 방향을 내가 정하거나 미리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우습게도 세상 만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오롯이 내가 결정할 수 없는 큰 흐름이라는 게 분명 있는 느낌이다. 근데 그 흐름을 절.대. 거스를 수 없다기보다는 흐름 같은 것으로 인해서 여러가지 조건이 좀 더 수월하다거나, 남들보다 괜히 더 어렵다거나 하는 느낌에 더 가까울 것 같다.
어쨌거나, 사주를 보기로 마음 먹고 사주 집은 지인 추천이 국룰이래서 지인에게 얼핏 들은 곳을 검색해서 찾아냈다. 근데 막상 혼자 가기가 괜시리 무섭기도 하고, 떨리기도 해서… 괜히 잘 살고 있는 친구를 꼬드겼다. 둘다 각잡고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없는 초짜들이었다.
도착한 곳은 작은 철학관이었는데 첫인상은 전혀 유쾌하지 못했음. 빌라에 위치한 일반적인 가정집의 방 한칸에서 상담하는 걸로 보였는데, 간판도 없으며 이러한 일이 으레 그렇듯 현금/계좌이체로 하는 걸로 봐서 사업자 등록을 했는지는 고사하고(안 했을 것으로 추정) 현관에서부터 기절초풍할만큼 찌든 담배냄새가 났음….
의심은 접어두고 자리에 앉으니 사주명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설명에만 한 30분을 할애함. 자신이 점을 보는게 아니며, 맞출 수 없고 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얘기를 여러차례 하였다. 여기서 살짝 동어반복, 중언부언이 거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세히 봐주는듯 하면서 사족과 곁가지가 많아 듣는 것이 피로하였다. 용건만 간단히를 외치고 싶었음. 그래도 정리해보니 별다른 질문를 준비해가지 않았는데도 이거저거 많이 말해준거 같다.
사주 풀이는 대략적인 흐름을 읽어주었다.
성격, 가치관, 장단점. 내 약점. 사주상 보이는 나에게 맞는 일과 안 맞는 일. 2025년의 흐름. 이동수. 문서 계약운. 결혼운. 배우자운. 말년운. 재물복. 타고난 기질이나 타고나게 약한 신체부위.
기질은 맞추었고, 성격도 대략 맞았다.
나의 성격에 대해 아주 깍쟁이스럽다, 까탈스럽다, 까칠하다, 꺼슬하다, 예민하다, 민감하다, 한 고집한다, 전형적인 여자 사주다. 라는 어째 부정적인 표현을 주구장창 써댔다.
앞서 본 내 친구에 대해서는 그저 “성인군자다, 마음이 너무 너르다, 이렇게 마음이 착해서 어찌 살려고 그래, 아이고 착해라.” 같은 소리를 해댔고 이에 대비가 될 지경이었음.
그러나 나에게 “성격이 더럽다”는 이야기를 꽤나 여러차례 해서 기분과는 별개로 신뢰감은 상승했다. 고객한테 성격 드럽다고 하다니 진짜가 분명해! 라며.
웃긴건 나에게 부모 잘 만나 재벌집에 태어나거나 시집가면 계열사 하나 정도는 맡아 무리없이 굴릴 것이라는 말도 했고 특이한 표현으로는 “공장장 사주” 라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사업체를 키울 그릇은 안 되어서 회장은 못 되는데, 머리가 좋고 눈치가 빨라서 사장이나 임원급으로 라인 하나 정도는 맡아 관리하는 직책에는
갈 수 있을 것이고, 개업같은 건 해도 되나 전문성을 가지고 해야만 하고 내가 처음부터 맡아서 마음대로 해도 되는 일만 개업해야 하며 처음부터 해야하는 사업은 하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별개로 돈이 잘 안 모인다고 했는데,
이건 흥청망청 쓴다는 것일까? 돈의 흐름은 있는데 모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나름 투자를 꾸준히 하고 있고, 유흥도 일절 하지 않고, 쓰는 것보다 잔고가 통장에 쌓이는 숫자를 확인하는 걸 꽤 좋아해서 변태처럼 모으는 편인데 이런 말을 하니 의아했다.
개인적으로 개빡쳤던 순간도 있는데
뭐, 만고불변의 진리라고는 하나
사주를 봐주는 사람이 계속해서
여자는 젊음과 미모, 남자는 권력과 재력이라면서요즘은 세상이 변해 커리어우먼이 많아졌고, 여자 사주에서 관이 직장, 배우자로 해석이 된다면서도 “여자 나이 서른이 적은 나이는 아니지” 라고 나를 나이로 멕였고, 한국 나이로 33살에 가지 않으면 38살-39살에나 시집을 갈거라고 했다. ㅋㅋ 그러면서 나에게 지금 나는 결국 내가 하려는 일이나 남자가 안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붕 떠서 이도저도 못하는 모양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또 올해는 이동이나 큰 결정을 하지말라고!! 하였다.
근데 사실 어차피 난 고집쟁이이니 내 뜻대로 할 거라서…언제건간에 결혼이라는 것은 ”잘“ 하는 게 중요하지 그저 하는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결혼보다 혼자가 낫고, 남자는 떠나거나 새로 만나더라도 내 커리어는 남을 것이므로 투자자의 안목으로 어디 비중을 높여야 하는지 잘 저울질 해야겠지. 나이로 봐서는 사실 지금은 남자 쪽으로 투자하는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남자와 결혼을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정착과 안정을 꿈꿀 것이 예상이 되고 그렇게 되면 정말 지금처럼 이따위로는 살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게 다소 무서우니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자꾸 나에게 도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도화를 자꾸 뭐 남자 홀리고 색기있는 도화로 해석하는데 그런게 아니라 그냥 관심과 주목이 따르는 것이라면서 나의 경우에도 끼가 많은 것이니 잘 사용하면 좋다고 하였다.
뭐 대략 맞는 것도 있었고 틀린 것도 있었는데. 다 듣진 않았고 기억에 남는 것만 남겨왔다.
인상 깊었던건 나에게 촉이 좋고 예민하고 꿈도 잘 꾸는편이라면서 이 사주를 가지고 신당에 가면 신기 떨어진 선무당이나 땡중한테 잘못 걸리면 나에게 신기 있다며 들러붙고 누름굿을 하자거나 신내림 받자 할 수도 있으니 절대 무당집 같은거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 했다. 이거는 나도 동의함. 신당은 가고싶지 않고 갈 마음도 없음… 히힛. 그리고 종교 믿으라고 했다가 내가 안색이 굳어지는걸 보자마자 종교 대신 수양 차원에서 요가나 정신없이 땀 흘리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체육도 좋다고 나는 잡념만 정리하면 된다고 하여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ㅌ콜드리딩인지 사주인지 다소 헷갈림.
근데 솔직히 듣다보니까 그냥 대충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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