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링구얼 미국인
미국인 남친이 한국어에 대한 흥미를 잃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우리 커플의 제1언어는 영어…
불편함은 없지만 아쉬움은 있다. 나도 가끔은 모국어로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는 모국어인데 나는 모국어가 아닌게 가끔 불평등하게 느껴진다.
특히 감정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가 유독 심한 날이 그렇다. 영어로 말하는게 평소에는 내가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걸 인지하지 않고 말하다가도 그런 날이 되면 외국어를 사용 중이라는 게 확 와닿는다. 그래서 입을 닫게 될 때가 있다.
싸울 때 본인은 영어 원툴인 주제에 논리적인척 하면 괘씸할 때가 있다. 물론 그래봤자 내가 이긴다. 모국어로 싸워도 남자는 여자한테 말로는 지는군요?
나도 사실 남친이 뻐끔뻐끔 한국어를 배우려고 할 때 한국어 실력을 키우게 짜란다짜란다 하며 엉뚱하게 틀린 한국어를 하는걸 귀엽게 봐주고 동기부여를 해줬어야 하는데 빠르게 인내심이 고갈되어서(…) 결국 뭔소리야 걍 영어로 얘기해 라고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친은 아직도 내가 자기를 좌절시켰다고 말한다. 난 진짜 교육자의 길을 걷지 않기를 잘 했다. 일정 부분 내 책임도 있으려나?
남친은 나에게 한국어 공부의 어려움을 여러 차례 토로한 적 있다. 연습 상대가 없다며. 한국어를 쓰고 싶어 한국인 친구를 만들면, 상대가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영어만 하는 관계로 바뀐다고 한다. 영어만 쓰고, 자기가 한국어로 말해도 다 영어로 답한다고. 그게 불만이다.
뭐 어쨌건 남친이 연습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아직은 한국어 대화가 불가하지만 남친이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한국어를 알아 듣는다는 사실에 가끔 놀라긴 한다.
다만 아쉬운게 언어를 좀 일차원적으로 접근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2외국어를 어느 정도 이상 구사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그런 개념이 있는데 남친에게 그걸 기대하는 거는 아직 좀 무리인거 같고, 남자친구는 스페인어나 한국어 등 제2외국어를 대할 때 컴퓨터 랭귀지 하듯 문법공식을 외우고 그대로 하면 말이 되는 줄 아는데 원어민 입장에서 이게 뭔 소리야 싶을 때가 많다. 이건 근데 해당 언어에 노출이 적어서 그런 것 같긴 하다.
한국문화에 관심 많은 편이라면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나 예능 같은걸 같이 찾아보면서 언어 노출을 늘릴텐데 불행히도 남친은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 정도의 대작 아니고서는 안 보는 편인데다 한국식 멜로물이나 신파극(?)에 예측 가능해서 노잼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하는 T발 C셔서, 안 통함.
언어는 사회문화를 담는 그릇이라서 그 구성원들의 마인드셋이 아니면 우리 언어로 명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표현이 많다. 그래서 언어에 원래 일대일 대응이라는 건 없단 말이 나오는 건데, 내 모노링구얼 남친이 이게 잘 안 된다. 듀오링고를 졸라 열심히 하는 남친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여러 잡념이 들어 써보았다. 그래도 듀오링고를 226일째 하고 있다. 절대 안 놓는게 어디냐, 그건 정말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