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무제

viv! 2023. 11. 29. 22:27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치열하게 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걸 아는 년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알아? 하는데 난 다소 아둔해서 정말로 정말로 해봐야지만 안다. 이를테면 전 직장에 감사한건, 내가 원한 삶은 이런게 아니라는걸 그 덕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도 권한도 없는 자리라 그랬을 수도 있으나 혹자는 부럽다는 그게 어지럽고 힘들었다. 업무 내용은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도대체가 업무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이게 업무인가? 한탄하는 날이 잦았다. 특히 루틴하게 쳐내는 업무 말고, 정말로 정말로 비정기적이지만 확실한 이벤트들이 생길때면 정말로 정말로 욕이 많이 나왔다. 내 맘의 소리는 이제 여기서 배울건 다 배운거 같으니 안주하고 책 덮지 말고 당장 짐싸서 떠나라는거였는데, 개미지옥처럼 한살한살 나이 먹어갈수록 그곳을 떠나는게 불가능한 것마냥 느껴져서 도태되는지도 모르고 도태될게 걱정스러워 불면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태생이 루틴한 걸 싫어한다. 대략적인 감을 익히고 나면 지겨워 미칠거 같은 도파민 중독자다. 그리고 내가 진정 궁금하고 내가 하고싶어야지만 움직인다. 스스로를 정의하자면 도파민에 찌든 게으른년으로, 아무리 나에게 이롭고 좋은걸 알아도 당장 나에게 흥미롭지 않으면 하기가 싫다.

나라는 사람은 인내심이라는 키워드랑 좀 먼 것 같다. 근데 내가 원하고 정말 궁금한건 인내심이 무한대로 늘어나고 하나를 잡고 후벼파는걸 좋아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도파민 중독자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래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건방지다. 내가 이걸 왜 해야하는지 내 스스로가 납득이 가지 않으면, 그러니까 내가 맡은 이 업무나 의무의 취지에 공감이 가질 않으면 표정 관리가 어렵다. 아무리 경직된 조직에 있어도 그게 안 된다.

내 일도 아닌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헛소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어째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거야. 취지에 공감 가고 나로서도 납득 가능하면 오히려 좋은거 아냐, 그럼 내가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잖아.

사실 모든 종류의 일이란건 막상 해보면 별거 없다. 해보기 전에야 외계어 같고,ㅅㅂ이게 도대체 뭐야? 메뉴얼이 왤케 많아? 하지, 막상 하면 원래 하던 놈도, 이걸 시키는 놈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막상 별거 없다는걸 깨닫는데 대략 일주일에서 두세달이 걸린다.

새 직장에서 내가 맡은 일은, 솔직히 이전 직장에서 맡은 일과 비교하면 오히려 간단한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더 힘들긴 하다. 성향적으로 더 맞는 부분은 좀 더 분석적이어야 하는 것. 덜 맞는 부분은, 좀 더 형식적이어야 하는 것?

글쎄, 내 머릿속에서만 그렇게 여기는 것일수도 있지만… 이 쪽 업무가 조금 더 꼼꼼함과 형식, 체계를 요하는 것 같다. 이전에는 내가 뭔가 상황에 대한 분석 방향이나 어조까지도 결정하고 위에서 나중에 까든말든, 그건 내 알 바 아니라며 올리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정해진 문구나 정해진 사실에 기반한 아주 정확한 팩트시트에 매우 정제된 어투로 약간 첨언하는 수준이니 말이다. 난 스키밍에 익숙한… 참 이런 쪽으론 젬병인가 싶은데 꼼꼼함에 있어서는 좀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한 사람이라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 조직에선 힘들긴 하다. 그래도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꼼꼼해 보여서 다행이다.

아직 다 파악은 못했지만 적어도 배울점이 있는 그런 조직이면 좋겠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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