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국] 뮌헨:전쟁의 문턱에서

viv! 2023. 11. 13. 02:34

전쟁이 발발하는 것은 지도자의 욕심, 무식한 신념과 군중의 광기 때문이다.


뮌헨: 전쟁의 문턱에서 는 2차 대전 발생 전, 전운이 감도는 유럽의 두 대학 동창이 각각 본국에서 외교관이 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 소설 원작 영화이다.

행복한 주인공들

등장인물은 휴 역할의 조지 맥케이, 폴 폰 하트만 역할의 야니스 뇌베너다.

George Mackay (Hugh Legat 역)
Jannis Niewöhner (Paul von Hartmaan 역)



줄거리; 스포 있음

옥스퍼드 대학의 졸업파티에 참석한 독일인 폴과 영국인 휴는 절친이고, 폴란드 출신 유대인인 레나는 폴과 애인 사이이다. 졸업파티 중 폴은 이런 대사를 한다.

I want to throw myself into the water in despair at our mad generation.

난 우리의 이 미친 시대에 절망한 채로 몸을 내던지고 싶어


이 미친 시대라함은 2차 대전 발발 직전의 유럽이다.

당대의 스트롱맨(strong man)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정치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다. 히틀러는 패전국 독일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면서(국뽕 치사량 주입) 삽시간에 유럽 전역을 긴장에 빠트리는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히틀러의 사상이 매우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을 당시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인종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국가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히틀러의 광기 어린 신념을 진정 옳다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옥스퍼드 유학 후 귀국한 레나와 폴을 보기 위해 휴는 뮌헨을 방문한다. 뮌헨에서 다시 모인 세 사람은 정치에 관해 대화를 하는데, 뮌헨은 선거를 앞두고 히틀러와 나치당의 뜨거운 유세와 지지열기로 달아올라있고 폴은 히틀러의 급진적 사상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 신흥 정치인과 이 정당은 뭐가 다르긴 다르다, 새로운 독일이 만들어질 것이다…”라는 믿음을 흥분한 채로 쏟아낸다.

정치에 단단히 미쳐있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는데, 토의가 아니라 싸움을 하려고 든다는 생각이 들 때가 그렇다. 진보 보수를 떠나 정치라 함은 본래 나와 네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를 올바르게 구리고 대체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너와 나 모두에게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옵션이 나을지 따져보는 일이고 그걸 토의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자세이건만. 어떤 열성적인 지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지지 정당을 떠나 작고 사소한 질문마저도 공격으로 인식하고 성이 나서 달려든다. ‘Against Democracy(2016)‘의 저자 Jason Brennon은 이를 비꼬아서 정치광신도들이 훌리건들 같다고 표현한다. 뭘 알고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팀이 좋아서 맹목적으로. 연고주의 같은 뭔가 하나 애착을 형성할 만한 관계가 있는 대상을 선정하고서는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맹목적 지지를 한다고 말이다.

폴이 살던 1930년대 독일은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1차 대전 패전국으로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배상책임에 허덕이고 있었다. 애초에 터무니없는 배상이었던걸 유럽 각국도 잘 알고 있어서 상당 부분 탕감해주기도 했지만, 독일 국민들의 불만, 굴욕감이 상당히 컸음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폴은 핏대를 세우며 왜 히틀러를 지지하는지 설명한다. 패전국 독일에 대한 열등감이 나치당에 대한 광신도적 집착으로 표출되는 듯 보인다. 이런 폴이 낯선 휴는 히틀러가 인종차별주의자라며 비판하고, 레나 역시 나치당이 얼마나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지적하지만 지적 토론과 조롱을 하며 친하게 지내던 과거와 달리 폴은 거세게 화를 내고 자리를 떠버린다. 정치에 대한 첨예한 입장 차이로 불편한 감정을 뒤로한 채 6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세 친구는 서로 연락 없이 살게 된다.



그 사이 휴는 영국 외교관이 되었다.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식사조차 못할 정도로 가정보다 일에 매몰된 삶을 살고 있어 거의 이혼위기 수준으로 개인으로서는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일에서만큼은 능력을 인정받아 총리 보좌 업무를 맡게 된다.

나랏일 하는 남자

영국은 당시 독일의 영토확장 의지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었다. 독일은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줄기차게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탐내고 있었고 세계 1차 대전 이후 또 다른 충돌을 막고 재건에 힘쓰고 있던 각국 정부들은 이런 독일의 야심, 정확히 말하면 히틀러의 야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참고로 당시 영국 총리는 체임벌린…
그 유명한 네빌 체임벌린이다.

폴은 독일 외교관이 되었다. 다만 그는 이제 반정부 조직에 몸 담고 있다. 여차하면 군부에서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제 손으로 직접 히틀러를 처단할 기회가 온다면 또 그렇게 하리라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히틀러에게 반쯤 미쳐있었던 열혈 지지자는 어디 가고 히틀러가 군을 동원하면 즉시 반역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입장이 급 선회하게 된 배경은 레나였다.

레나의 말이 옳았다. 히틀러는 잘못된 신념 그릇된 철학으로 유럽을 다시 잿더미로 만들 사람이었다. 레나는 그걸 알았기 때문에 히틀러의 야욕을 저지하고자 히틀러 반대시위에 참석했고 잡혀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자 등에 다윗의 별이 강제로 새겨지고, 창문밖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정말 창문밖으로 사고로든 고의로든 떨어진 건지, 하도 두들겨 패서  혹은 전기고문 같은 걸로 반병신이 되자 사고로 떨어졌다고 둘러댄 건지 알 순 없지만 레냐는 감옥 같은 병원에서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 하는 반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신세가 됐다.

레냐와 비록 헤어졌지만 한때 사랑했던 사이였던 폴은 크게 충격을 받고 히틀러가 미친놈이라는 걸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히틀러를 지지했던 것을 매 순간 후회한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뮌헨을 무대로, 무사태평안일주의에 가까웠던 영국(휴) 독일의 야욕에 집어삼켜지고 살상 대상이 되어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남은 폴란드 등 약소국들과 유대인(레냐) 그리고 광기에 빠졌던 그렇지만 다시 이성을 차리고 과거를 후회하는 독일(폴)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네빌 체임벌린의 고뇌를 나름대로 각색함으로써 대단히 역사적으로 변명할 창구를 열어주었다. 거의 네빌 체임벌린 대변인 수준으로 체임벌린도 필요한 모든 노력은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후대가 그렇게 평가할지라도 사실 당시에는 마냥 안일한 것만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없었으나 늦췄으니 된 것이다라는 쪽으로 메시지를 풀어가려는 듯 보인다. 변조차 참으로 영국스럽군.


그렇지만 네빌 체임벌린은 역사적으로 최악의 악수를 둔 총리가 맞다. 독일이 오스트리아 합병을 준비하는 것에도 안일했고 체코의 땅을 넘볼 때에도 묵인했으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정말 그것만 먹고 나가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영국을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싶지 않았던 것은 맞지만 결단력 있게 저지했더라면 사실 독일은 오스트리아 합병 단계에서부터 고배를 마실 수도 있었을 일이다. 좌절한 히틀러가 탈당하고 미술학교에 갔을지도 모를 일이고.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가정해 본다면 말이다.

네빌 체임벌린의 뮌헨협정에 비할바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마주 앉아서 절대 우크라를 침공하는 일이 없다고 했지만 우크라 침공이 현실이 된 일이 있다. 역시 정치인들의 그렇고 그런 평화 선언은 전혀 믿을 게 못되며, 국방력 없는 외교는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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