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나잇값
한국인들은 처음 만나면 아, 실례지만 몇 년생이신가요? 하며 서로 나이를 묻고, 때론 그걸 기반으로 호칭을 정한다.실례면 묻지를마 나이는 바꿀 수 없는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기에 이런 방식이 물론 편리할 때도 있다.
한편 전세계인이 일년에 한 살씩 나이를 똑같이 먹는데도 유독 한국 사회가 “나이”문화를 강조한다. 흔히들 몇 살에는 무엇이라는 분명한 인생 과업이 존재하기도 한다. 한국 문화는 그만큼 나이를 떼어놓고 인간관계를 규정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이 문화로 인해 제약도 많이 생긴다는 생각이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는 나이를 잊고 사는 것도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나이에 너무 빡빡하다.
졸업을 했지만 여전히 모교 커뮤니티를 눈팅하는데, 26살은 ~하기에 너무 늦었나요? 같은 소리가 매년 올라온다. 26살이 뭐가 쳐늦어! 라고 한국나이 28의 나는 외치지만 동시에 나 또한 그러데, 28살은 ~하기에 너무 늦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은 30살도, 28살도, 26살도 늦지 않았다. 무엇에 비해 늦었다는 것인가? 지금 늦고 이르고가 80,81,82 세에 돌이켜 보면 유의미한 1-2년일까? 늦었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고민해보면 된다.
잘 늙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한다. 주변의 나잇값 못하는 늙은 인간이나 아주 귀한 확률로 마주치는 어른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서 늙은이가 아닌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성을 가다듬는것 같다.
나이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먹기 때문에 나이를 더 먹은 것은 유세를 부릴 일도 칭찬 받을 일도 아니다. 그냥 서서히 노화해가고 있을 뿐. 불행히도 계속 노력하지 않으면 나는 퇴화한다.
선사시대 때나 살아온 연륜이 곰에게 사냥당할 위험을 줄여줬겠지 이제는 살아온 경험이랄건 딱히 전수해줄만한 가치가 없다. 노인 혐오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 그렇다.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내가 아는 정보 자체는 내일이면 이미 옛것이 되어버리는 세상에서, 그나마 새 정보를 캐치업 하는 20대나 30대 초반과 달리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는 나이면 이미 뒤쳐진다.
그래서 나는 생일에 무감각하고 연차에 무디다. 생일이면 한살 더먹은 우울감이, 특히 전년도에 내가 이룬 것이 없을 경우, 심해질 뿐 즐겁지는 않아서 그렇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고 나이만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해에는 내 나이를 그냥 가리고 싶을 때도 있다. 아직 이십대임에도 그런 생각이 드니까 나는 아마 내가 아는 일부 인간처럼 되지는 않겠구나 위안을 삼는다.
나이 먹은 것을 경험이 많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큰 판단오류이다. 어떤 사람의 1년은 다른 한 사람의 5년보다 압축적으로 값질 수 있다. 고속성장이라는게 있다. 인생 굴곡이라는건 어느 타이밍에 올지 모르고 이른 나이에 그런걸 겪은 사람들은 나보다 어릴지라도 배 이상으로 성숙할 수 있다. 이걸 인정하면, 나이를 떠나 상호존중 문제는 필수적인 것이 된다. 그걸 모르는, 앉아서 나이만 쳐먹은 인간들이 더 많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존대를 한다. 존대를 쓰는 것은 안전한 장치같다. 상대에게 무례하지도 않지만, 동시에, 나랑 말 놓을 정도로 가까워지지는 말자고 미리 선을 그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한국 나이 문화나 반말 문화가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