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에 대한 뇌피셜 토막글

생각보다 길어진 전쟁으로 물자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하르키우를 탈환하는 등 전세가 불리해지자 부분동원령 및 점령지 국민투표 실시 계획을 발표한다.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언론에는 대체로 러시아가 수세에 몰려 어쩔줄 모르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싶은 의문이 들긴 한다. 나는 러시아가 수세에 몰렸다는건 서방 언론 (과 우리 언론도 서방의 손을 타니까)이 좀 보고싶은 것만 보는 탓이라는 생각이 있다.
물론 러시아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전세는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러시아는 사실 이 '전쟁' 아닌 '군사작전'이 빨리 끝날 줄 알았고 젤렌스키가 코미디언 출신이라 우크라를 코미디로 본건지.... 이렇게까지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거셀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건 사전에 뭐 준비가 부족했던 탓일 수도 있고 러시아도 보고싶은대로만 본 탓일 수도 있고 모르겠다, 나도 전문가는 아니니깐.
그런데 중요한건 우크라에서 전쟁이 펼쳐지고 있고 러시아는 지금 종전이 되어도, 사실상, 국토나 자국 내부 인프라에는 영향이 없다. 영토를 잃지도, 기반 시설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설사 자금줄이 묶이고 군에 타격이 있었어도 경제 인프라 모든 것이 파괴된 우크라이나만큼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불행히도.
그래서 사실 종전이 언제되건, 국내적인 여론만 잘 진압하면, 러시아는 전쟁을 장기화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물론 국내 여론이 제일 무섭다. 국민들이 빼액 소리지르면 뭐가 됐건 abort the mission 해야한다. 다음 선거때 표를 얻지 못하면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아주 그냥 영영 매장이니까.
근데 푸틴 같은 독재자에게 국민들은, 어느 정신나간 정치인들의 말처럼, 개돼지이고 붕어개구리가재이다. 근근이 먹고 살 수 있게만 만들어주면 사실 들고 일어나지 않는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민심만 괜찮다면 사실상 집권에는 큰 타격이 없다는 것. 소수민족 위주로 끌고가고, 고학력자(대도시)는 제외하고, 계약직 군인 증원하고... 다 그런 맥락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경고가 없어도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어차피 극히 낮다. 왜냐면 푸틴이 다 같이 죽자는 마인드가 아니라면 핵은 자멸,상호절멸이기 때문에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다. 그리고 설사 푸틴이 핵 사용을 강력히 희망한들, 핵 버튼을 푸틴 혼자만의 단독결정으로 누를 순 없을 것이고 여러 참모들이 동시 승인해야하는 뭔가 시스템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러시아라도 ...매뉴얼 있지?) 반대자들은 다 죽여버리고 푸틴이 단독 실권자라면 몰라도 핵의 위험성, 사용 후 러시아가 지불해야할 대가 등을 고려해서 차라리 간부들끼리 작당모의를 해서 다 푸틴에게 씌우고 푸틴을 제거하는 편이 편하지 푸틴이 싼 똥을 같이 연대책임 해야하는건 영 골아프니 말이다. 나라도 어차피 죽게 생겼으면, 푸틴 부터 죽이고 아, 전쟁은 유감이다. 하며 러시아의 앞날을 살릴 방향으로 잔대가리를 먼저 굴려볼 것 같다. 삼국지에서 적에게 투항할때 대장 목부터 갖다바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러니 핵 사용 같은 뚱딴지 같은 가능성에 앞서서 이 전쟁이 끝날 가능성과 누가 종전을 가장 바라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이제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쪽은 서방이다. 서방 국가들은 처음에는 이 전쟁을, 우크라이나가 줘터지든 말든 관전했다. 왜냐면, 물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먹어버리는건 심각한 힘의 균형 붕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막아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뇌사 상태'라고 조롱 받았던 NATO도 결속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에 무기와 군수물자를 지원해주면서 내부적으로는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불안해하는 주변국가들에게 무기를 팔았으니까. 게다가 미국으로서는 러시아의 전력을 약간이나마 가늠해볼 기회였을 것이다.
근데 유럽도 계산착오가 생겼다. 전쟁이 너무 길어졌다. 그리고 미국이 대러제재해! 라고 압박한 순간, 다들 어찌저찌 그래! 우리 반러전선을 만들자! 아주 경제 제재로 혼쭐을 내주겠어 하며 동참은 했는데, 대러제재 영역에서 천연가스를 빼자니 독일이 너무 타격이 커져버렸다. 일단 울며겨자먹기로 하긴 하는데... 참 러시아 가스 없이 겨울 어찌 버틸지 걱정인 것이다. 이 전쟁이 빨리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겨울까지 전쟁을 질질 끌어버리면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한 상태로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것이 큰 고비일 것이다.
-와중에 독일은 빠가사리도 아니고 왜 러시아에 의존도를 그렇게 키워놓은걸까. 진짜 안일하고, 태평했다. 러시아는 이미 2008년부터 드릉드릉 거리고 있었는데 그걸 너무 오래 간과했다...미래의 안보싸움은 식량과 에너지에 있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탈원전은헛짓거리지
미국은 크리티컬하게는 아니지만, 다극화체제로의 전환 얘기가 나오고, 미국중심세계질서는 트럼프때부터 망가지기 시작해서 이미 오바마때부터 단물 빨아 성장한 중국이 깝치고 다니며 힘의 붕괴가 일어날 것으로 우려되는 바로 이 시점에
아프간에서 철군(미국이 아프간에서 원하는 걸 얻었을까? 이 주제도 찬반이 뜨겁다. 이건 다음에 다뤄야지) ,우크라이나가 줘터지는 걸 관망하니 :와 씨 미국 약빨 다 떨어졌네, 저새끼 뭐냐? 러시아가 저렇게깝치는데도 가만히 있네. 라는, 돈은 돈대로 쓰고 욕먹는 놈 이미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하드파워로는 압도적이지만 사실 소프트파워도 그에 비견가게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모든 국가가 미국을 슈뻐빠월로 대우한 것인데, 소프트파워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특히, 대만은 심히 불안해했다. 펠로시가 괜히, 굳이 굳이 대만까지 와서 중국 개빡돌게 하기 훨씬 이전부터 줘터지고 있는 우크라에 미국이 흠터러스팅 거리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속이 속이 아니었을 것... 사실 나도 태평양이 언제 전쟁에 휘말리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중동->유라시아->다음의 next 화약고라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자꾸 푸틴과 히틀러가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마크롱이 졸라 해맑게 "자자 전쟁은 없을거라고" 했을 때 나는

넥스트 네빌 체임벌린은 마크롱이겠구만 하며 비웃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었다. 하하하.
사실 이 사태를 키운 것은 서방이다. 그러나 이제 슬슬 서방은 전쟁을 끝내고싶어하고, 푸틴도 어느 정도 그 생각에 동조한다. 러시아가 아무리 전쟁을 오래 끌 수 있다고 한들 시한은 있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의 반발이 거세지면 푸틴으로서도 난처할 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양측에게 가장 간단하면서 실현 가능한 해법은 중간에서 합의를 내는 것인데 그것은 아마 병합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승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열강들이 히틀러의 야욕 앞에 체코를 버렸듯 일단 여기서 푸틴이 저지될 것이라고 믿고 병합지역을 내주고 전쟁을 종료하자고 우크라를 압박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푸틴이 국내에서 입지가 강화된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푸틴이 우크라에서 갈아버린 군사력 끝에 손해만 입은 것 같지만 사실은 원하던 바는 그 작은 친러지역들이었으니 결국은 승전이 되는게 아닐까.
러시아가 병합지역에서 실시하는 국민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따라 또 갈리겠지만, 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규탄이나 엄중한 경고 따위는 믿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우크라이나만 박살나고 너덜너덜해지고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말짱하게 국제사회로 복귀할 것 같다. 게다가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중러를 끼워준 대가로 UN 체면이 말이 아니다.
러시아가 병합된 지역들을 정식적으로 승인받는 것에 만족하고 물러간다면 불행중 다행이지만 문제는 독일이 그랬듯 러시아도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정말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이 우려하듯 안보불안이 심화되면, NATO도 개입하게 되지 않을까.? 그때 쯤 핀란드의 NATO가입이 확실시되면 두말없이 참전이겠지.
중국은 이 상황을 어찌 보려나ㅡ SCO 참석 때 시진핑은 푸틴에게 전쟁을 그만두라고 언급했는데, 그게 진심이라면 그 이유는 NATO간의 연대 강화 및 확장 가능성을 우려해서일까? 친서방진영이 더욱 돈독해져서 중국을 더욱 배척할까 우려스러워서? NATO가 확장되고 유럽 각국의 군비지출이 늘어나니 신이 난건 미국인데, 언제까지 마냥 신나만 있을까? 만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일까?
문득 하루에도 열 두번 전략적 파트너가 바뀌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매우 궁금한 미국의 머릿속과, 다극화되는 세계 속에서 한국이 바라봐야 하는 곳이 미국일지, 제3의 지점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