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 101

첫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다양한 인간군상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흠터러스팅…
우선 인간이 아주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보통의 인간에게 절대 선 혹은 절대 악은 없다. 각자의 이익에 따라 그때그때 이기적으로 굴지만 인간말종이 아닌 다음에야 일말의 도덕성이 남아있어서 나름대로 자기검열을 거친다. (고 믿는다) 각자의 사고체계를 거쳐서 행동한 다음 다들 나는 착해, 내 행동은 정당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좀 비참하거나 우울한 사람들 혹은 좀 웃긴 사람들은 있지만 선하거나 악한 개념은 범죄자가 아닌 일반 사람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개념같다. 그런데 하기사 “비참하거나 우울하거나 웃긴 사람들” 이란 정의도 모두 내가 주관이 개입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애초에 사람을 정의하기엔 객관성이 없다.
사회생활이란 다양한 세대가 함께 부대끼며 일을 하다보니 나이든 쪽에서 아무말이나 하다가 젊은 쪽에 어쩔 수 없는 실언을 내뱉기 마련이더라. 어린 쪽은 사실 실언할 기회도 많지 않다. 발언권이란게 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니.
이러다보니 지난 일여년간 회사를 다니며 슬프게도 의도치않게 습득한 “실언에 대처하는 스킬”이 생겼는데 생각보다 간단하다. 실언이라는게 뇌에서 필터 없이 입으로 나온 것이니 나도 똑같이 아무 생각 없이 되물어보면 된다.

이런 느낌으로.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업무 배우는 과정에 있었던 내가 상사에게 칭찬을 받자 갑자기 나에게 “날로 먹지마” 라고 했다. 웃으며 가볍게 지나가듯 말했다치더라도 “날로 먹다” 라는 워딩 자체가 보통의 경우에는 상대 앞에서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생각해서 순간 내 뇌를 파고들었다. 내 상식 선에서 이해 안가는 언행이었던지라 진심으로 그 말이 머리에서 소화가 되지 않았고 즉각 되물었다. “아, 제가 날로 먹었나요?”

후에 곱씹어보니 내가 어쩐지 받아친거 같기도 하고 내심 요것 봐라 싶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던게 아니라 진짜, 진심 뭔 소릴 하는지 못알아들었었다. 내가 나중에 , 아니 지금이라도 나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애한테 할 소린 아닐 것 같아서.
근데 이 우연한 일을 기점으로 무례한 언행에는 상기시키며 되물어보는 것이 의외로 추후의 실언을 막는 것에 효과가 좋다는걸 알았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종교에 회의적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집단을 혐오했다. 그리고 그냥 그런 늬앙스를 첨부터 대놓고 풍겼다. 나는 무종교인으로서 그 사람이 종교를 혐오하는 것이 일정 부분 이해가 가면서도, 진심 신기했다. 만일 내가 티 안내는 기독교신자면 어쩌려고? 그런데 내가 요상한 눈빛으로 보는 것을 느낀건지 어느날 그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좀 있는데 혹시 크리스쳔인가?” 라고

이건 나에 대해서 업무외적 평가를 하며 넘겨짚는 태도 에 더해 기독교인이라는 어떤 보이지 않는 집단에 대한 이미지를 씌우는 것이라서 개인적으로 매우 불쾌했다.
아니라고 하니 조금 머쓱해했다. 그리고 이제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기독교신자가 아님을 확인했으니 본격적으로 기독교 비하적 드립을 서슴치않았다.
난 그 사람이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기독교 싫어하는 티를 내놓고서 나에게 기독교 분위기를 풍긴다는 질문을 한 건 무슨 의도일까? 나도 참 피곤한 성격인지라 그게 머리에 남았고 너무 너무 궁금했다. 내 어느 부분이 기독교인 같았던거지…!! 기독교인은 어떻게 생겼길래…!! 무슨 분위기?!
그래서 어느날 한번 단 둘이 밥 먹을 때 툭 물었다 “근데 그때 왜 저한테 기독교인 같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기독교인들 싫어하시면서” 당황하여 횡설수설하더니 기독교? 자긴 그런말 한적 없다 했다. 그러더니 대뜸 나보고 전혀 기독교인같이 안생겼다 했다. 그 종교 뭐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고 그냥 믿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이 있으니 좀 그렇다는 거다~ 식으로 얘기했다. 아니 알겠고 그래서 기독교인같이 생긴게 뭔데; 기억을 하기 때문에 당황한걸텐데 민망해서인지 이리저리 둘러대는 걸 보는 것도 참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비교적 젊은 사람이 나에게 “몸이 자그마하고 흑발에 쌍커풀이 없는 눈 같은 동양적인 마스크가 있어서 외국인들이 보통의 동양여자나 한국여자를 떠올렸을 때 떠올릴만한 이미지.” 라고 말했고 나는 당시에 그 코멘트가 그저 놀라웠지만 그냥 눈을 게슴츠레 뜨고 실눈웃음을 하고 말았다. 이건 당신이 남자였거나 여기가 미국이었으면 성희롱이나 인종차별로 고소해도 할 말 없겠다…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 어떤 50대는 위 코멘트에 덧붙여 “눈매가 좀 사납잖아” 같은 말을 했다. 난 “우리 엄마아버지가 이렇게 낳아준건데 니가 왜 지랄이세요?” 를 “부모님이 이렇게 낳아주신건데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라고 했고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냥 서로 당황스러운 말을 안하면 안당황해도 되지 않을까..?
당황할거면서 왜들 뇌에서 필터를 제거하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순간순간 수습을 못하는 나보다 어른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늙지말아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저들이 처음부터 저렇지는 않았을테고 언제부터 이런… 뭐랄까 조심해야 한다라든가 하는 감을 잃기 시작한걸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물론 내가 어려서 만만해서 생각씩이나 해가면서 말할 필요도 없는 존재라 여겨 그런걸수도 있겠다 싶지만서도 업무외적으로 나를 지적하거나 코멘트 하는 모든 것들이 뭐랄까, 왜 불필요한 짓을 하지 싶다. 이해받길 바라지도 않겠지만 나로선 이해가 가질 않아..!
회사는 친목질하려고 모인 곳이 아닌 업무 하려고 모인 곳이니까 아주 막나가지만 않는다면 적절히 모두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잘 지낼 수 있지 않나? 그러면 자연히 서로 대하기 어려울테니 서로 입으로 똥 쌀 일도 줄어들텐데, 스스로 존중받지 못할 말을 굳이 입 밖에 낼 필요가 있나?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되물으며 사는게 옳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내가 되묻는 행위는 결코 그 사람이 각성하게 하여 필터를 강화시킬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사회성 떨어지고(혼자 있는거 좋아하면 사회성 떨어지는 애임) 싸가지없는(본인이 뭐라했건 어린년이 맞는 말 하면 싸가지없는 것임) 혹은 할 말 다하는 이상한 요즘 애가 되어버리는 것이니, 이래저래 귀찮아질 뿐.
사실 내가 그냥 포기하고 허허 사람 좋게 웃어넘기면 될텐데 문제는 이 모든걸 다 아는데도 내가 그게 잘안됨…ㅅㅂ
근데 저들의 머릿속에서 “이상한 요즘 애”로 낙인찍히는게 나에게 크게 크리티컬한가? 하면 사실 아니다.
초반에는 내가 문제가 있는 줄 알고 졸라게 고민했었는데 그냥 뭐랄까 어차피 세상에는 모래알만큼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뭐. 암만 너무 편해서, 생각씩이나 하며 말 필요가 없어서라고 해도
나를 향해 입으로 똥 싼 사람에게 “어 똥이다!! 왜 입으로 똥 싸요?!” 하는게 꼭 마이너스 일까?

어차피 모두가 날 좋아하는 상황은 생각만해도 크리피하고 일터에서 날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이미 있고 일터 밖에서 날 좋아해주는 사람은 더 많다면 …대체 뭔 상관이지?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아무래도 협업만 가능한 수준이면 날 똑또구리로 생각하든 개똥벌레로 생각하든 치와와로 생각하든 크게 상관은 없긴 하네…왓에버.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나는 착해, 나도 내 행동은 정당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