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고민 인생고민
돈 없어서, 여유도 없어서 개나 고양이 못키우는 비루한 인생.
나는 계속 여행을 다녀야 하는데 그럼 개는 누가 봐주냐.
나는 이제 월급쟁이로 일년을 채운 만1년차 직장인이 되었다. 월급쟁이라 함은 매달 주어지는 푼돈으로 한달 벌어 한달 사는 한달살이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 안에서도 계층이 나뉘어 누군가의 월급이 누군가의 연봉에 육박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서민은 벌지 않으면 자산이 줄어들고, 중산층은 벌지 않으면 유지되고, 부자는 이러나저러나 자산이 자산을 낳는 사이클에 진입해서 일을 하든 안하든 차이를 못느낀다.
내 현 벌이는 완전한 서민계층 그것도 저소득 축에 속하며 갓 대학 졸업한 애가 별 기술도 없이 찔끔찔끔 버는 것 감안하면 괜찮지만서도 이게 무슨 발전이랄게 있나 싶고 여기서 뭔가 타개할만한 돌파구를 찾기도 어려워보이는 상태다. 한마디로 혼자 벌어 혼자 입에 풀칠만 가능한 아주 딱한 상태.
벌이 외 또 다른 문제는 내가 요즘 미치도록 권태롭다는 것에 있다. 내 일은 아주 조금 손에 익고 나니까 권태로운 것이 되었다. 남들은 머리 쓰는 일이라 하는데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이걸 머리를 쓸 게 있나 싶은 그런 단순 노동같거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을 기가막히게 잘하는건 아닌데, 그냥저냥 매일 꾸역꾸역 해내는 느낌이다. 해치우는 느낌인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갑갑함이다.
일에 주인의식을 갖기가 어렵다. 업무가 재밌냐? 하면 간헐적으로 그렇기는하다. 조직 내 말단인 내 일은 단순히 말하면 그냥 계속 보고를 올리는 일이다. 나는 끊임없이 조사하고 적는다. 때로는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적는다. 단순히 있었던 일을 적기도 한다. 이러니까 무슨 연구원 같기도 한데 전혀 뭐 대단한 이코노미스트적 인사이트가 필요한 건 아니라, 내 포지션은 딱히 전문적일 필요가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대단한 인사이트도 없지만 애초에 그런 정성을 들이기도 아깝다. 간결하고 단순하면서 내용이 알차긴 해야하는데 뭐 솔직히 딱히 대단히 중요한건 아니라서 그렇다. 그냥 필요하든 안 필요하든, 기록남기기용으로, 해야해서 하는 일을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기타 잡스러운 업무를 한다. 안하는 것 빼고는 다 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아닌 나쁜 버릇이 늘어난다.
내가 이걸 왜 하지? 라는 생각부터, 나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고, 아니 시발 공들여 하나 안하나 내 벌이가 똑같은데 왜 사서 고생한담 이라는 생각. 그 다음에는 안 해. 나보다 급한 놈이 하쇼. 수고. 요딴 마인드가 된다.
기본적으로 내가 안 해도 누군가는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나보다 급할 것이다. 라는 마인드로 업무를 하니, 서로 안 도와주고, 팀워크라는 것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서로 일을 안하려고 하니 결론적으로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굴러가게하려고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혹은 어쩌다보니 일을 도맡아버려서 할 수밖에 없게된 불운한 지정업무를 받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업무 시간 내내 뭘 하는지 서로 알 길이 없는게 맹점 오브 맹점.
존나 한심스럽지만 이게 바로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다. 비뚤어진 인센티브. 적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뭘 해야하나?
그러니 내 업무가 하찮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 일이라는 생각보다 남의 일을 내가 잠깐 대신해주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A에게 일이 불만족스럽고,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대신해주는 느낌이라고 얘기했더니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그런 느낌을 줄곧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을 바꾸려는건 내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개뻔한 소리를 해서 또 사람을 열딱지나게 만들었다. 맞는 말이니까 열 낼 일도 당연히 아니건만. 그냥 남자친구의 모든 말에 다 성질이 나는거 보면 불만족에서 멈추지 않고 점점 미쳐가나.
아빠에게 같은 얘길 하니 아부지는 내 얘길 가만히 듣더니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거기서 즐길 수 있는거 하면서 천천히 길게 보라고 했다. 월급 타서 이걸 저축해서 뭘 하겠다 이런거(푼돈….)라기 보다는 그냥 여기 있을때 여행도 많이 다니고 배우고싶던거 배우고 그렇게 즐기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니까 조급해하지 말라고.
문제는 아빠의 이러한 접근 방식이 나로서는 굉장히 체할 것 같다는 것이다. 위의 릴렉스&인조이 처방은 내가 일정한 시간(max. 3년 본다) 내에 뭔가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거품처럼 사라질 아빠의 기대 안에 있다. 일단 내가 “명분 좋게 쉬러 간 것” 이라고 생각하는 아빠는 내 현재 상태를 도피성 취업 정도로 보고 있다. 공부는 하기 싫고,그렇다고 마땅히 하고싶은게 없는데 조급증은 나서 덜컥 들어간 곳. 그 정도로 생각하신다. 그러니 매일 말 끝마다 뭐 얼마나 할건데. 이제 그만 들어와라, 하지. 그 말인즉슨 나는 이제 그냥 명태 눈깔을 하고 다닐 수가 없다.
지난 1년간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힌 생각은 ;
1. 나는 대체 잘하는게 뭘까?
2. 나는 왜 사람을 대하는게 이리도 서툴고 어색할까?
3.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빠나 A만큼은 못 벌겠지?
4. 나는 왜 이모양일까?
특히 나는 A라는. 가장 서로를 잘 알고 많이 대화하는 상대가 있다. 나에게 A가 잘 버는 것이라든가, A에게 기쁜일이 생기면 배알이 꼴리는거나 눈꼴시려운건 당연히 아닌데, 그냥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축하해준다기 보다는 얜 이렇게 자기 인생을 잘 개척해나가는데… 뭘 해먹고 살지 자기가 스스로 잘 아는데 난 왜.. 왜 아무것도 모르겠지? 나는 왜 이모양이지 싶은그런 마음이 들어서 들뜬 A를 놔두고 내 생각에 잠겨버린다.
애초에 돈 문제에서는 A를 이길 생각이 없다.
그렇지만 문과 직종이 밥 벌어먹고 사는거 자체가 기적인 세상임을 감안하더라도 진지하게 현타가 오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ㅅㅂ 왜 이따위로 살아야하지. 하는. 그렇다고 해서 내 기술은 없으니까, 나는 이 따위 삶에 만족해야 하는게.
와중에 트리거가 된 사건은 이번 미국 여행에서 S네 부부를 만난거였다. S는 A의 전직장동료로 매우 절친해서 우리 커플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솔직히 … 뭔 ;; 걍 대충 밖에서 밥 먹지 뭔 또 집에 부르냐 싶어서 졸라 가기싫어서 온갖 핑계를 다댔는데 몇번 안된다 했더니 가능한 시간대를 나노단위로 물어보길래 결국 가기로 했다.
무지막지한 이과놈들.
S는 현직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다. 그리고 S의 와이프 L은 중국인인데 화이자에서 정부계약을 담당하는 과학자였다.
그냥 뭔지 몰라도 듣기에는 일단 개쩌는 이 조합을 넘나 쿨하게 딸랑딸랑 만나러 갔다. 그리고 미중합작 프로젝트인 그들의 갓 돌지난 아이도 만났다. 근데 그 아이는 날 보고 울었다. Wtf!! I am your mom’s kind!!!
이유는 모르겠는데 여지껏 젖먹이 갓난쟁이 미국애들은 다 날 보면 울었다.
아무튼 A와 S는 오랜만에 만나 너무 반가워했고… 곧바로 자기들이 진행중인 프로젝트나 근황으로 들은 개쩌는 it가 이슈등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이 일할때 얼마나 재밌었는지, B가 얼마나 노답이었는지, R이 얼마나 야박했는지 등등 회사썰도 재밌게 풀어줬다. 나야 뭐 전 직장 동료들 이름 주섬주섬 주워들은게 있으니 아 대충 맞장구 쳐주면서 재밌어하는데 같은 동아시아계라는 묘한 동질감 때문인가… L은 나에게 나에 대한 질문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나는 걍 내 얘긴 짧게 하고 이 아이티클라우드들이 빅데이터니 새로운 마소 캠프니 메타버스니 엔에프티니 하는거나 듣고 와인이나 마시고 가려고 한건데…
L이 생각보다 끈질겼다.
와우, ‘정확하게’무슨 일 해?
여기서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시작되었던것 같다. L은 향후 계획도 물었다.
난 불편해졌다.
그래서 좀 아무말이나 했다.
나중에 대학원에 갈 생각이라고. 끈질기게도 어느 나라에서 갈 생각 중이냐고 묻길래 한국 갈거라 했다.
미국이라 하면 또 꼬리질문 + 너네 그럼 같이 살거?ㅎ같은 개오지랍까지 나올 것 같아서 봉쇄차단해버림.
그리고 그 집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난 왜 내 진로에 대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질문 받았는데 불편했나?
나를 제외한 세명은 자기 얘기할 틈만 생기면 아주 그냥 이때다 싶어서 말을 안멈추려고 했는데 나는 나에 관한 대화를 빨리 스킵하고싶었다.
그건 현상태가 마음에 안들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지금이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나니까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조급해졌다.
A는 그 집을 나오면서 S가 성공했으며, 얼마나 성실한 노력파인지 칭찬하다가 S 추천을 받아 M사로 이직을 할 수도 있겠으나 (S가 계속 권유함) 자긴 하이브리드가 싫어서 안되겠다면서 애틀랜타에 옮겨올 예정인 빅텍 컴퍼니들 중에 풀리모트 제안이 오는 빅텍이 있으면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서는 저 집은 L도 S만큼 벌고하니 애 키우는데 들어가는 돈만 제외하면 둘이 큰 돈 쓸 일 없겠다며 혼잣말을 했다. 그걸 듣자 갑자기 그 자리에서의 내 자신이 억대 연봉 과학/기술자 3명 사이에서 혼자 제3세계 외딴섬 같은 소리나 하는 루저처럼 보였을 것 같았다. A는 내 얘기를 듣더니 깔깔 웃고 왜 루저야 넌 위너야 내 마음의 위너~ㅎ같은 개드립을 쳤지만 난 이미 알았다.
저 테이블에서 난 걍 공통 공감대도 찾을 수 없고, 흥미롭지도 않은 사람이었을거다.
내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일수도 있겠으나, 어느 순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흥미로운 사람이 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람은 그리고 별 다른게 아니라 자기개발을 꾸준히 해내며 자기 일을 사랑하는데서 온다.
나는 자기개발도 안하고, 내 일도 그 자체로 사랑하지 않고 현타 온다 시발 소리나 달고 살고 있는 마당이니 당연히 저런 자리가 불편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내가 제3세계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치 내가 대단한 사명감으로 자원나온 대단히 애국적이고 대단히 훌륭한 사람인것 처럼 말들을 했다. 할 말 없어서 아무말이나 한 걸수도 있지만 아니 어쩜 그런 곳에서…! 아니 왜 하필이면….? 이런 말들을 줄곧 했다.^^
얘들 머릿속에서 터키는 난민천지에 무슬림 테러단체들이 들끓고 후진적이고 낙후되고 여자 차별하고 아무튼 사람 살 곳 못되는 동네인거 같았다.
처음에 들을 때는 사실 일부 평소 하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웃긴 부분도 있어서 동조했는데 계속 듣다보니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야! 일부 맞는데…까도 내가 깐다고. 그렇다고해서 내가 지금 체류하는 이 나라가 싫은 것은 절대 아니다. 좋든 싫든 나는 이 나라랑 엮이고, 그걸 계기로 성장했기 때문에 아마 평생 이 나라를 나에게서 끊어내고 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권태로움도, 싫증과 무기력함의 근원도 아마도 이 국가 자체에서 오는건 아닐거다. 여긴 언제나 이 정도 노답이었고, 딱히 내가 한국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기도 하고. 한국이라고 노답구석 없냐?
한국도 노답인데 뭐.
근데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이유야 많다.
정체되는 느낌. 새롭지 않은 느낌. 심심하고 재미 없고.
A도 이제 슬슬 지겹다는, 그래서 A가 오려고 하면 어쩐지 떨떠름하게 미안해지는 내 동네.
그리고 꼭 여기가 아니더라도 문과직종으로 살아가는한 월2-300 받으면서 평생 살 거라고 가정해보면 우울감이 밀려와서 혀깨물고 죽고싶다.
그럼 뭘 할 수 있느냐?
간단하다.
공부.
싫으면?
싫으면 시집가. 직장 다닌다는 명함만 파고 대충 시간 떼우다가 시집 가는 시나리오는 남동생이 나를 골려먹기 위해서인지 요즘들어 부쩍 자주 들먹이는데 솔직히 일 시작하고 일에 빡돌기도 하고 사람에 빡돌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옆에 결혼무새인 A도 있고 하니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결혼해서 미국으로 튀어버리는 상상! 도미! 는 횟감 브런치 카페에서 맨날 보던 그 맘들을 내가 하는거다. 퐁퐁시티? 예전에 미국 가서 맛보기 해봄... 그땐 대학생이었던지라…
A 출근(그때는 갓 개발자가 되어 오피스 가던 시절,, 9시 반 출근이었음)하는 것도 자느라 놓치고 침대에서 눈만 반쯤 뜨고 어어~ 다녀와! 얼마나 한심했을까…11시 즈음 일어나서 티비 좀 보다가 점심시간에 나온 A랑 밥먹고 (… 지금 내가 점심 때마다 챙긴다는 이유로 ㅈㄹ하는거 생각하면 쫌 미안하다.) 몰 가서 A 퇴근 때까지 쇼핑/네일/마사지/뭐 사먹기 하며 방황하다가 A 퇴근하면 같이 또 저녁 먹으러 가고 집에 와서 넷플 좀 보다가 잠드는 그런 고양이 같은 인생.
근데 결론은 너무 노잼ㅋ
솔직히 4시 이후에는 A만 목빠져라 기다리는 느낌 지울 수 없었고 이틀만에 좀 지겨워짐.
남는건 나를 죽어라 업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인데.
대체 나는 뭐가 가능할까…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뭘 쫓으면서 살아야 하는걸까…난 뭘 하는 걸 좋아하지…. 난 뭘 잘하지…난 뭘 싫어하지? Cant, Can, Dont, Do 를 구별해서 뭔가를 정리해봐야 한다.
입사 1년차가 되자 남자친구는 나에게 혹 연봉 협상 같은걸 하냐고 물었다. 나는 장난하냐ㅋㅋㅋㅋ사기업도 아니고 그런게 어딨어, 주는대로 받는 직업이야하니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내 직업 존나 꾸지다고 말하고 싶지만 날 존중해서 입밖으로 못 내는게 다 느껴졌다^.^ 자격지심대마왕
리모트도 안돼고, 그렇다고 페이가 좋은 것도 삶의 컨디션(특히 국가)가 좋은 것도, 명예로운 것도 아니면서, 내가 뭐 이 일이 미친듯이 좋은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왜 하는지?를 굉장히 돌려 물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일단 한국 가기 싫어서지 뭐.
아빠가 회사 다니기 싫으면 그만두고 곧 세입자 나갈 집에 들어가서 살라고 했는데 거기서 혼자 지내면서 공부하라고. 근데 그건 부모님 밑으로 완전히 들어가 사는거나 다름 없다. 한국에 있으면 아무래도 제약도 커지고 그만큼 안정감도 커지겠지만 뭘 알아보고 준비하는 기간 동안 나는 또 초조함과 불안감에 시달리겠지.
난 공백기를 굉장히 무서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음 페이스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고서는 소속을 놓기가 무섭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 가서 A한테 메이는 그런 관계는 상상만해도 너무 극혐이고 얘가 날 좋아하는거랑 별개로 내가 얠 좋아하는거랑도 별개로 이 사람이 메리지 머테리얼인지는 내가 아직 확신이 좀 안서기 때문에…
내가 내 힘으로 자립해서 유학이든 취업이든 이뤄낸 다음에 A를 고려하고 앞으로 내 인생에 ‘우리’라는게 있을지도 내가 결정하고 싶다.
아무튼 잘난 A는 “이직 준비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정체하게 되어있어. 사람은 필연적으로 게으르거든”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이고 나발이고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면 나랑 맨날 싸우기만 하니까 자긴 이제 아무 얘기도 안할테니 내가 알아서 결정하고 뭔가 계획이 생기고 마음이 정리되면 그때 알려달라 했다. 그리고 진짜 띠껍게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내 주변에도 참 많은데 M도 맨날 자기 일 싫다고 하거든? 근데 걔 지금 5년째 거기 있잖아. 싫으면 바꾸면 돼. 근데 사람들은 맨날 핑계가 많아. 그냥 하면 되는데. M은 늘 시간이 없다고 해 근데 시간이 없는 사람은 없거든. M은 공부할 시간은 없는데 게임하고 낮잠잘 시간은 있다? 그 말은 그냥 의지가 없는거지”
이러더라. 맞말인정인데 뭔가 정내미가 증발해버렸다. 그래서 아,진짜 짜증나네 사람이 컴퓨터도 아니고 너는 뭐 태어나서 의지박약인 순간 한번도 없었어? 너는 막 인생이 술술 풀리디? 걍 M이든 나든 니가 친구로서 남친으로서 이모셔널 서포트 좀 해주면 안되냐? 걍 좀 내가 쭈구렁망탱이인거 듣고 있으면 안돼? 내가 뭐 해결해 달래? 그리고 너 지금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거야? 걍 그랬냐하면서 달래주고 넘어가주는 날이라도 있으면 안되냐? 내가 뭐 맨날 이러는 것도 아닌데 너한테 이런 말도 못해? 너한테 안하면 누구한테 하는데? 하면서 아주 밑도끝도 없이 열폭해버렸다. A는 그 와중에도 “자극 되는 말이 아니라면 사실 아무 도움이 안돼. 그런 위로는 안하느니만 못해” 이럼.
휴 씨발 그래 나는 사실 팩폭 당해서 빡친거지 뭐.
핑계도 많고 맨날 시간 없고 피곤하고 뭐 그런 핑계.
근데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일을 하면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주제에, 그 일상이 싫어서 바꾸고자 한다면 그럴 시간이 없으면 안되는거지. 내 일이다 싶은 일에 투자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야 하는게 맞지. A가 결국 맞는데. 맞는건 아는데 그래서 뭘 어떡하냐고.
으휴 나도 웬만큼 악랄하게 말하는 스타일인데 저건 진짜 가만보면 나보다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