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4월의 좋았던 순간들

viv! 2019. 5. 19. 16:49

사실 모든 순간들이 선물같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
그리고 이 시간들을 선물해준 남자친구에게 너무 고맙다.



1. 디즈니월드는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해마다 더 화려해진다고 하는데, 대체...
얼마짜리 폭죽을 얼마나 쏘는건지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화려한 불꽃놀이쇼는 처음봤다.
캐슬에 비추는 캐릭터들과 킹덤 전체에 울려퍼지는
디즈니 주제곡들은 디즈니 덕후들 심장을 내려앉게 하기에 충분했다.
핫도그 하나에 만원 받고 팔아서 저기다가 쓰나보다.
보람차다.


나는 사실 디즈니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있었는데 디즈니 랜드를 처음 알게 된 2004년부터 올해 이전까지 디즈니가 나에게 준 것은 기대감과 실망, 인간 존재에 대한 배신감...상처 그 뿐이었기 때문이다.

반복된 실망감이 안겨준 집착같은거라 해야하나.

때는 2004년, 반장선거에 나온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 Ö양은 이렇게 말했었다

“ 나 올여름 파리 가는데 나 뽑아주면 우리 반 전체 디즈니랜드 ㄱ!”

그녀는 선거에서 압승을 했고 그녀의 부모님은 유일무이하고 발칙한 선거공약에 당혹스러워했다.
지금은 그 집이 ㅈㄴ부자지만…당시에는 아버지 사업이 그정도까진 아니었다 ㅋㅋㅋㅋ 게다가 4인가족 기준만 잡아봐도 비행기삯에 리조트니 식비 그리고 티켓비용 이동비 하면 돈 천 우습게 깨지는데 반 전체 20명 넘는 애들은 무슨 수로 데려갈거...?ㅋ 하지만 당차고 대책없는 그녀의 공약 만큼이나 순진무구했던 우리는 “에이 설마 ㅎ 근데 진짜?” 하는 마음이었음.

그리고 그녀는 자기 혼자 가족들과 여름동안 파리로 떠났고 개학 후 디즈니랜드 얘기를 하는 바람에 모두의 공분을 샀었다. 정말 ㅋㅋㅋㅋ탄핵감임ㅋㅋㅋㅋㅋ

아직도 흑역사로 놀려먹는다 너 도대체 우리 언제 파리 데려가줄거냐고...

2005년, 이듬해 나는 파리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부모님이 프랑스 여행을 계획한 것. 나는 너무 신이났고 당연히 그리고 드디어 디즈니랜드라는 곳을 가보는구나 싶었다. 모나리자니 모네니 하는것은 관심이 없었고 지금 당장 그 망할놈의 디즈니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봐야겠더라.
파리 여행이 시작되고 나는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줄을 서다가 아차 싶어서 ,
“아빠, 우리 디즈니랜드 가?”하고 물었었다.
아빠는 “박물관들 다 보면 갈거야.” 라고 했고
나는 안심하고 노잼 루브르 노잼 오르세 노잼 노잼 대노잼 베르사유 오랑주리 등등을 꾹 참고 봤다. 지식이라곤 쌀알만큼도 없는 꼬맹이가 보기에 벌거벗고 찌찌 드러내고 몸을 온갖 방향으로 꼰채 눈에는 초점이 없는 동상들이나 그림들을 보는건 고역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줄 서는건 어떻고...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문화예술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연신 속으로 ㅇㅉㄹㄱ 하는 중이었고 빨리 빨리 디즈니랜드!!!! 하는 중이었다.ㅋㅋㅋㅋ
그리고 대망의 파리 마지막날, 나는 불안해졌다. 도무지 디즈니랜드라는 곳으로 갈 낌새가 보이지 않는 것. 나는 참다못해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라는 에펠탑 앞에서 줄을 서다가 물었다. “아빠, 우리 디즈니랜드 내일 가는거야?”
그러자 아빠는 “? 디즈니랜드? 우리 거기 안가” 라고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에서 처음 배신을 당한 순간이다.

이때 처음 “어이없다” , “허탈하다” , “허무하다” 라는 동사의 뜻이 와닿았고 너무 큰 실망으로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게 된 2015년,
나는 프랑스인 남자를 만났고 파리 출신이었던 그는 우리 아빠가 날 어떻게 배신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재밌어하며 “파리에 가면 꼭 디즈니랜드에 데려가주겠다” 고 약속했다. 그리고 디즈니랜드랑 파리의 그 낭만적인 이미지로 꼬셔댐. 하지만 나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파리를 금방 가지는 못했고 겨우 프랑스행 비행기에 올랐던 2017년, 나는 파리에서 생일을 보내기로 했고 그는 “깜짝 놀랄 이벤트”를 해주겠다고했음.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인지 알겠다고 생각했고 계획은 다 짰다면서 디테일한 일정은 하나도 말해주지 않길래 ㅎㅎㅎ정말 디즈니랜드를 가는 줄 알고 있었다...
결론은 김칫국 원샷이었고 그 깜짝 이벤트는 디즈니가 아니었음. 게다가 그는 현지인답게 요목조목 관광객답지 않은 일정을 다 짜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디즈니랜드에 가보고싶다” 하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디즈니랜드?? 거긴 가려면 최소 이틀은 빼야해... 차라리 하루동안 갈 수 있는 리옹을 가는건 어때?” 했다. 결국 그가 미리 모든 일정을 다 짜놓은 덕에 편하게 여행했지만 내가 정작 가고싶었던 디즈니랜드는 갈 수가 없었다.

이게 인생에서 당한 두번째 배신인데 아빠 데쟈뷰 보는거같았음. 이쯤되니 약간 현타가 왔다. 내가 디즈니랑 연이 없나? 아니 난 걍 혼자 갈 운명이구나 싶었음. 그냥 돈 빡세게 벌어서 혼자 와야지 ㅋㅋㅋㅋㅋ이런 마음으로 마음을 비웠었다.

그리고 2018년, 나는 다시 파리에 간다. 이번에는 디즈니를 포기한채로 갔으니 무소유의 마음으로너무 편안했다.
같이 간 친구가 디즈니랜드 얘기를 하는순간 사실 마음이 살짝 날뛰었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돈이 없어서 못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돈 열심히 벌어서 이담에 있고싶은 만큼 있을 수 있을 때 가야지. 하고 룰루랄라 하고 왔다. 다 늙어서 디즈니를 가겠구나 생각하며.

여기까지 얘기해주자 남친은 엄청나게 좋아했었다. 남의 비극을 대놓고 희극처럼 봄.
하긴 내가 봐도 나는 너무 디즈니 못가서 한맺힌 애같으니까 웃기긴하다.
아냐 애초에 기대를 안하게 하면 되는데 다들 구슬리려고 거짓말한거라서 그렇다. 나는 피해자야.

아무튼 남친은 그때 나랑 사귀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디즈니 , 내가 데려가줄게” 라고 어디서 많이 들은 상남자 개소리를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썸타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남친이 나한테 호감 가졌던건 알던 상황이라서 얘가 나한테 수작부리는구나 싶었고
당시엔 얘랑 사귈 생각도 없었고 당연히 같이 여행 갈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가까운 미래에 파리 여행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
“어 그래~ 옵 콜스~”이러고 말았음.

그런데 2019년 남자친구가 정말로 디즈니에 데려가준 것이다.

와 숙원사업 아닌가 싶었다 이쯤되면?

근데 결국 파리 디즈니는 아니었다.

올랜도 디즈니월드였다!!!🙌❤️🙌



더 좋아😆🎉




2. 남자친구의 서프라이즈



남자친구는 주중에는 출근을 해야했다. (데이오프를 미리 내 둔 날짜들 빼고) 보통 10시에서 10시 반쯤 출근을해서 2시쯤 밥을 먹고 5시에서 5시 반에 퇴근하는 스케줄이었는데 나와는 점심 때 만나 밥을 먹고 다시 복귀, 나는 남친 만나는 곳이나 그 근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식이었다. 아니면 ㅋㅋㅋ집에 우버로 가서 낮잠을 자거나.
완전 게으른 하우스 와이프의 삶을 살아보았다. 노잼이더라 하우스와이프 못할듯 ㄹㅇ...

나는 별 수 없이 점심시간과 퇴근시간까지 남자친구를 기다리며 공원/쇼핑몰/미술관/도서관 등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하루는 점심을 먹고 나는 쇼핑몰로 가고 남친은 오피스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뭔가 계획을 가지고 간건 아니었어서 뺑뺑 돌다가 결국 그 넓디 넓은 쇼핑몰에서 남친 화장품, 내 화장품, 내 여름용 셔츠 하나 산게 전부였지만.
보통 5시쯤 퇴근하는 남자가 5시 40분이 되도록 나를 데리러 오지 않고 연락이 없어서 나는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중인데 내가 연락하긴 싫고...

6시가 다 될 무렵 뒤늦게 데리러온 남친이 나를 달래면서 한식을 잔뜩 먹였고 (이때 이미 화 풀림) 뭐 샀어? 하면서 쇼핑백에 관심을 보였다. 그럼 나는 또 밥먹다말고 신나서 이거 보여주고 저거 보여주고. 밥먹고 후식으로 맛있게 버블티 한잔 빨고 집에 가니까

꽃이 뙇! 편지가 뙇! 챠클릿과 스위스미스가 뙇뙇!

😍

내 남친 꽃 사주는거 참 좋아하는듯 싶다.
아무 날도 아니지만 꽃 사줄 줄 아는 감성 있는 남자라 좋네.

남친 늘 페레로로쉐 사준다. 근데 나는 사실 페레로로쉐 안 좋아하는디.... "페레로로쉐 과자 식감이랑 아몬드니 땅콩이니 이에 끼는거 싫고 눅눅해서 안사먹는 편이야………“라고 말을 못했다.

그리고 코스트코키즈로 자라난 나는 일찍이 친미미각으로 핫쳐클릿은 무조건 스위스미스죵 하고 다녔었다. 그러나 꼭 마쉬멜로우 들어간 애로 사먹었었는데... 오리지널이네~~!!!


바라는게 많음.


3. Tybee island , Savannah oh na nah.

가보니 내가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곳.



둘이 별건 안했고
해변가에 차를 세워두고 그냥 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걸어도 걸어도 계속 해변이라서 좋았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걷자~ 하고 걸었다.
해변에서 우리 닮은 조개껍질을 줍고
물에 발을 담그고 작은 물고기들을 보고
갈매기와 해파리를 보고
누군가가 지어놓은 모래성을 발로 부수고
어린아이처럼 놀다가
드디어 배가 고파져서 느릿느릿 밥을 찾아 걸어갔던가?

서둘러 발의 모래를 털려고 남친 앞으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나에게 웬 남고딩이 다가와서 작업을 걸었다. 고딩인건 어찌 알았냐면... 애들이 무슨 학교 단체로 온거같았다 ^^ 뒤에 보니 친구들ㅇ 와글와글,,,,말 안해도 앳되어 보이는 얼굴. 서양인들은 팍 삭아서 23살만 넘으면 아재미가 폴폴 나는데 긴가민가하면 미자다... 잘봐줘야 20살일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근데 남고딩이면
 올해 갓 대학생 된 20살짜리가 00년생이니까 최고 01년생 아니니..? 너무 웃겨서 “???너 지금.. 나?한테 말하는거야? 낰ㅋㅋ?ㅋ야 얘 나한테 작업거는거같은데?” 하면서 남친 돌아보니까 남자 고딩이 막 “Oh you with him? Sorry! I didn’t mean to be disrespectful! I’m sorry” 했다.
남친은 완전 빵터져서 “Hey man, She is way too old for you.” ㅋㅋㅋㅋㅋㅋㅋㅋ하고 나랑 둘이 끼룩끼룩 웃고 남고딩은 친구 무리로 도망감.

 
5년 뒤에 오면 놀아줄게...( ͡° ͜ʖ ͡°) 누나랑 놀자.




게와 새우
넘 맛있었지만 내 게가 아마 오버쿡 됐던거같다. 
도저히 까먹을 수가 없어서 거의 울뻔했는데 나중에 게까기 달인 남친이 게 다 까줌. 하하. 어미새 같았다.

무겁고 나른한 몸으로 차에 몸을 실었을 때 


석양.

일직선 도로에 앞뒤로 차가 없어서 우리만 달리는듯한 착각을 가지게 했다. 끝없는 땅을 보고 있으니까 정말 여기가 미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이 아마도 급하게 연장한 미국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던가?

너무도 스페인에 돌아가기 싫어서 어물쩡대다가
해가 다 지고나서야 Atlanta로 출발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하늘에 뭐가 엄청 많았다.
창밖으로 빛나는 점들을 보다가 우와, 저게 별인가봐??? 하자 남자친구가 히터를 빵빵하게 틀고 선루프를 열어주었다. 나는 조수석에서 시트를 뒤로 젖힌채
별이 쏟아질듯한 하늘을 보면서 잠시간 말을 잃었다.
고등학교때 봉사 갔던 몽골 이후로 이런 하늘은 정말 처음이었기 때문에 잠깐 넋을 놓고 보았다. 바람은 차고 차는 따뜻하고 하늘은 예쁘고 도로에는 우리뿐이고. 황홀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One Republic의 Counting Stars가 흘러나왔는데 그때의 기분은 정말 이상했다.
남자친구가 예전에 그 노래를 들으면 자꾸 우리를 생각하게 되고 괜히 슬퍼진다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나도 그때 그랬던거같다. 괜시리 밤하늘에 취해서 감상적으로 변했다. 그 전까지는 하늘을 보면서 재잘재잘 오늘 일을 얘기를 하다가 둘다 말이 없어졌다.노래가 끝나갈 때 쯤에 정말 우리는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남자친구가 힐끗 내 쪽을 바라보고 씩 웃는 모습을 보고 그냥 그런 고민은 나중에 하자고 생각했었다. 지금 좋으면 됐다고.

4. 두번의 꿀잠 치킨 피크닉


코리안 치킨은 그냥 닥치고 존맛탱 세계최고의 음식이다.
원래 피크닉 계획은 샌드위치와 샐러드 와인을 싸들고가서 하하호호 하면서 하는 딱 서양틱한 소풍놀이였으나 우리는 치킨을 사랑하기 때문에 두번의 피크닉 모두 치킨과 함께였다.

헬로치킨? 인가 땡큐치킨인가 암튼 이름 단순하기 그지없는 치킨을 먹었는데 정말 존맛이었다! 하지만 정말 대존맛탱오브존맛탱은 충만치킨이었다...
얼마나 맛있었냐면, 우리 둘다 사진이 없음 ㅋㅋㅋㅋㅋ그냥 입에 우겨넣기 바빴나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은거 다음날 오븐에 야식으로 돌려먹었는데 그래도 진짜 맛있었다!

애틀랜타 충만치킨 꼭 가세요 여러분들 . 한국치킨이 그립다면 여기가 답입니다. 저는 한식 가뭄이 든 스페인에서 거기까지 가서 정말 광명 찾았어요... 한국인에게 치킨 수혈은 정말 꼭 필요한듯.

저렇게 퍼먹고나서 배 부르니까 이제서야 예쁜 경치도 보이고 사람들 말소리도 들렸다 .뒤로 발라당 누워서 몸포갠채로 하늘보고 얘기하고 근처에 돗자리 아줌마들 19금 대화 엿들으면서 둘이 잠깐 낮잠 잠. ㅋㅋㅋㅋㅋㅋ바람은 솔솔 불고 햇살은 따뜻하고 아주 끝내주는 분위기였다...



5. 남자친구의 브렉퍼스트💕

남친은 출근 전 늘 아침을 차려줬다.
나는 늘 침대에 널부러져 있었고 때로는 남친이 깨는것도 모르고 잠을 자기도 했다.
남친의 아침은 매일 그 퀄리티가 조금씩 달랐지만 ㅋㅋㅋㅋㅋㅋㅋ 아침마다 백수 여친에게 뭔가 챙겨주고 나간다는게 어딘가!!! 정말 사랑한다.


나는 환자처럼 침실에서 상을 받는것도,
식탁에서 다 차려진채로 공주처럼 대접 받는것도 둘다 좋았다.



매일매일 아침 차려주면서 귀찮아하지 않고, 내가 빽빽거릴땐 딱 먹을걸 물려주는 이 남자랑 결혼해야하는건가 하고 진지하게 고민했었음.

그래서 이 글은 결국 자랑과 사랑이다.

반응형